ADVERTISEMENT

선수·지도자·심판에게도 협회장 투표권을 許하라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10일 대한축구협회 회의실에서 축구국가대표팀 홍명보 감독이 사퇴 회견을 한 후 허정무 부회장과 인사를 나누고 회견장을 떠나고 있다. [뉴시스]

졸속(拙速). 한국 축구 행정을 한마디로 압축한 단어다. 어설프고 대충 처리하는 느낌이다. 한국 사회 전체를 포괄하는 ‘빨리빨리’ 문화와도 맥이 통한다. 가끔 기대 이상의 성과에 빠져 졸속인 줄도 모르는 것 같다. 미적거리며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부족해도 서두르는 게 나을 경우가 있어서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면 무섭게 움직이는 게 한국 축구와 한국 사회의 약점인 동시에 장점인 셈이다.

 2002년 월드컵 4강을 일궈낸 거스 히딩크 감독을 영입한 것은 ‘졸속’의 대표적 성공 사례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이 끝난 후 한국은 허정무 감독 체제로 2002 한·일 월드컵을 치르기로 했다. 하지만 2000년 말 레바논 아시안컵에서 일본이 우승하고, 한국은 졸전 끝에 3위에 그치자 허정무 감독을 물러나게 한 뒤 부랴부랴 외국인 감독을 물색했다. 히딩크를 영입한 건 치밀한 행정의 승리가 아니라 로또를 맞은 것 같은 행운이었다. 하지만 행운은 행운일 뿐이다. 더 이상 한국 축구의 미래를 행운에 맡길 수는 없다.

 다시 한국 축구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월드컵은 죽을 쒔고, 홍명보 감독은 물러났고, 정몽규 축구협회장은 고개를 숙였다. 한국 축구는 이제 다시 새로운 출발선에 섰다. 뼈아픈 패배를 딛고 새로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위기이자 기회의 시기다. 박근혜 정부의 코드로 말하자면 한국 축구의 비정상적 관행을 정상화해 적폐를 일소하고 한국 축구를 개조할 찬스다.

‘히딩크 기적’은 졸속 행정이 낳은 로또
당면 현안은 새 감독을 찾는 일이다. 한국 축구 대표팀 감독이라는 지위를 두고 ‘독이 든 성배’라고 한다. 과장된 수사법이 아니다. 감독을 걸핏하면 갈아치우는 건 시정해야 할 적폐 중 으뜸이다. 축구 대표팀 부실의 가장 큰 원인이다.

 2002년 월드컵이 끝난 후 코엘류, 본프레레 감독을 거쳐 2006년 독일 월드컵 본선을 지휘한 사람은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었다. 이렇다 보니 외국인 감독 입장에서도 로열티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독일 월드컵 개막을 수개월 앞두고 아드보카트 감독이 월드컵 이후 러시아 프로팀으로 간다는 소문이 돌았고, 결과적으로 사실이었다. 독일 월드컵이 끝난 뒤 핌 베어벡이 사령탑에 올랐지만, 아시안컵을 거치며 낙마했고 허정무 감독에게 기회가 돌아왔다. 히딩크에게 밀려 지휘봉을 잃은 감독이, 히딩크 감독의 제자였던 베어벡의 뒤를 이어 사령탑에 올랐다. 묘한 인연이다. 허정무 감독은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사상 처음으로 원정 월드컵 16강이라는 성과를 냈다. 축구협회는 대표팀 감독을 더 맡아달라고 요청했지만 명예를 회복한 허 감독은 독배를 그만 내려놓았다. 그리고 또다시 축구협회의 ‘감독 쇼핑’이 이어졌다.

 경남 FC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내고 있던 조광래 감독은 대표팀에 부임한 뒤 스페인식 패스 축구에 도전했지만, 평가전과 월드컵 3차 예선에서 잠시 삐걱대자 곧바로 경질됐다. 조중연 회장이 앞장서서 전북 현대에서 ‘닥공 축구(닥치고 공격의 약자)’로 주가를 높이고 있던 최강희 감독을 영입했다. 그는 본선에 진출시킨 뒤 프로클럽으로 복귀하겠다는 조건을 내걸고 지휘봉을 잡았고, 지난해 가까스로 본선 티켓을 거머쥔 뒤 미련 없이 전북으로 되돌아갔다.

 조광래·최강희 감독이 팀을 맡는 동안 국내파와 해외파 선수 사이의 갈등이 외부에 표출되는 등 대표팀에 이상 조짐이 발생했다. 이 같은 어려운 상황에서 지난해 7월 홍명보 감독이 부임했다. 월드컵이 겨우 1년 남았고, 선수단 분위기가 좋지 않았기에 적임자를 찾기 쉽지 않았다. 대신 축구협회는 홍 감독에게 2014 브라질 월드컵이 아니라 2015년 1월 호주 아시안컵까지 맡기기로 했다. 월드컵에서 다소 부진하더라도 2015년 아시안컵에서 가능성을 입증하면 2018년에 다시 한번 도전할 기회를 주겠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월드컵에 대한 팬들의 실망은 상상 이상이었고, 홍 감독과 축구협회도 더 이상 버텨낼 방법이 없었다.

결승 진출 독일 감독은 대표팀 지도 10년

요아힘 뢰프 감독

이제는 한국 축구도 장기적인 비전을 세우고 감독을 뽑아야 한다. 독일의 요아힘 뢰프 감독은 2004년부터 2006년 독일 월드컵까지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을 보좌하는 코치로 일한 뒤 자연스레 지휘봉을 물려받아 이번 대회까지 지휘하고 있다. 코치 시절까지 포함하면 10년 넘게 대표팀을 지도하고 있는 셈이다. 독일 축구는 브라질 월드컵에서 예전과는 확연하게 달라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괜히 나온 결과가 아니다.

 감독을 외국인으로 할 것인지, 국내 감독으로 할 것인지가 현재 논란이 되고 있다. 각각 장단점이 있다. 하지만 이젠 다시 한번 외국인 감독을 중용할 때가 아니냐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알제리와의 경기에서 드러나듯 한국 대표팀은 전술적으로 월드컵 본선에 오른 다른 팀과 비교해 경쟁력을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양궁에서 외국팀이 한국인 감독을 데려가 노하우를 배우는 것처럼 축구에서는 아직 한국은 유럽이나 남미의 선진 축구에서 배울 게 많다. 독일 감독을 영입한 미국과 스위스처럼 한국보다 축구를 잘하는 강팀도 외국인 감독을 중용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최근 한국 대표팀을 괴롭히고 있는 국내파 선수와 해외파의 갈등, 의리 엔트리 논란도 외국인 감독이라면 좀 더 쉽게 극복할 수 있다. 히딩크 감독은 2001년 부임 후 “한국은 기술은 좋은데 체력이 부족하다”고 한국 축구를 진단해 신선한 충격을 줬다. 체력은 뛰어나지만 한국은 기술이 부족하다는 기존 한국 축구계의 진단과는 정반대였다. 지금 한국 축구엔 히딩크처럼 새로운 패러다임을 펼쳐줄 지도자가 필요하다.

 감독 선임보다도 중요한 게 있다. 축구협회의 개혁이다. 현재 축구협회 행정에는 현실에 맞지 않는 게 많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때까지만 해도 기술위원회는 한국 축구의 상왕(上王) 같은 구실을 했다. 대표 선수 선발에 관여하고, 전술을 비판하고, 감독의 선발과 해임에 절대적 권한을 휘둘렀다. 히딩크가 성공을 거둔 건 이용수 기술위원장이 이 같은 지위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그 이후엔 기술위원회가 대표팀을 서포트하는 조직으로 기능이 축소되면서 유명무실해졌다. 축구협회 정관에는 여전히 기술위원회가 상당한 권한을 지닌 조직이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황보관 기술위원장이 대표팀 지원팀장을 겸직하며 제 역할을 할 수 없었던 배경이다. 감독을 효과적으로 서포트하고 한국 축구 전반의 축구 기술을 향상시키는 실질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기술위원회의 권한과 책임에 대한 재설정이 필요하다.

폭력적인 팬 문화도 축구 발전에 독
축구협회장 선출 방식도 바꿔야 한다. 현재 시·도 축구협회장이 대한축구협회장 선거에 매우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축구협회장 투표권을 선수·지도자·심판·축구산업 종사자 등으로 확대해야 근본적으로 축구협회를 개혁할 수 있다. 소수의 시·도 축구협회장만 관리하면 축구협회장 자리를 무난히 유지하는 현재의 시스템으로는 축구협회 개혁을 이뤄낼 수 없다. 선출 방식 변경은 축구협회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상위 기구인 대한체육회와 문화체육관광부의 협조도 절실하다.

 축구협회가 예산 1000억원이 넘는 거대한 기구가 된 이후에 초심을 잃고 관료화됐다는 비판도 새겨들어야 한다. 대표팀 의무 관리에도 허점을 드러냈다. 황열병 주사를 마이애미 전훈 직전에 맞혀 컨디션 조절에 애를 먹었다. 대표팀의 상업적 효용이 커져 대표팀 주치의와 의무분과위원회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내실 있는 준비는 부족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축구 대표팀을 향해 엿을 집어던지는 직설적이고 폭력적인 팬 문화도 아쉬움을 남겼다. 실패하고 돌아온 대표팀에 대한 태도에는 한 나라의 국격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러시아 대표팀은 얼굴을 가린 채 공항을 빠져나가야 했다. 반면 세계 랭킹 1위 스페인은 16강 진출에 실패했지만 스포츠 전문지 AS는 “용서를 구하지 말라. 그동안 우리는 대표팀에 많은 것을 빚졌다”며 격려했다. 땅 문제, 회식 영상 등 축구와 무관한 문제로 홍명보 감독은 커다란 상처를 받았다. 16년 전 프랑스 월드컵 때 차범근 감독을 전격 경질하던 때처럼 한 사람을 희생양으로 삼는 건 한국 축구 발전에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해준 기자 hjlee72@joongang.co.kr

오피니언리더의 일요신문 중앙SUNDAY중앙Sunday Digital Edition 아이폰 바로가기중앙Sunday Digital Edition 아이패드 바로가기중앙Sunday Digital Edition 구글 폰 바로가기중앙Sunday Digital Edition 구글 탭 바로가기중앙Sunday Digital Edition 앱스토어 바로가기중앙Sunday Digital Edition 구글마켓 바로가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