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침과도 같은 백44가 승착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15면

제37기 왕위전 본선리그 제1국
[총보 (1~254)]
白·李世乭 6단 | 黑·朴正祥 3단

'이세돌'이란 이름 석자가 바둑계의 새로운 화두가 되었다. 지난 10년간 '이창호'란 존재는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였다. 그 미스터리가 풀리기도 전에 또하나의 숙제가 바둑계에 던져졌다.

이 두 사람은 얼마나 다른가.이창호9단이 물이라면 이세돌6단은 불이다. 이창호9단이 방패라면 이세돌6단은 창이다. 이창호9단은 '솜방망이'라는 별명이 말해주듯 상대에게 결코 상처를 입히지 않으며 서서히 무너뜨린다. 이세돌6단은 날카로운 발톱으로 한방에 보내버린다.

이창호의 깊은 우물은 아직 바닥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세돌의 칼날이 얼마나 강하고 빠른지 아직 저울에 달아볼 기회도 없었다. 그가 계속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창호와 이세돌의 전쟁은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두명의 불가사의(不可思議)가 싸우고 또 싸우다 보면 뭔가가 드러날 것이다. 지금은 섣부른 예측을 삼가고 때를 가만히 기다릴 수밖에 없다.

이 판의 후반에 朴3단은 계속 차이를 좁혀갔으나 2백54수만에 종국해 계가하니 반면 3집승. 덤을 제하고 결국 3집반을 졌다. 李6단은 계속 잘 두고 朴3단은 계속 끌려다닌 것 같지만 불과 3집반 차이다. 박정상3단의 바둑도 이미 상당한 경지에 들어섰음을 이 결과가 말해준다.

돌이켜보면 흑17 때가 어려웠다.기세로는 분명 이렇게 바짝 다가서야 옳다. 그러나 18,20의 공격을 받아 쫓기면서 흐름이 어수선해졌으니 과연 기세를 끝끝내 존중해야만 옳았던 것일까.

이런 흐름 속에서 40의 돋보이는 감각이 등장했고 朴3단은 이 수에 강력히 반발한다. 흐름을 바꾸고 싶었던 것이다. 하나 43이 오버페이스. 순간 이세돌의 손끝에서 독침과도 같은 44가 터져나오면서 바둑은 순식간에 백쪽으로 기울어버린다. '참고도'가 바로 이 장면이다. 흑1에 백2의 습격이 바로 李6단의 승착이었다(221=36).

2백54수 끝, 백 3집반승.

박치문 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