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이슈] 그 시절이 좋았었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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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4면

젊은 직장인들 사이에 복고(復古)의 바람이 불고 있다.

학창 시절 즐기던 불량식품을 사먹기도 하고,한동안 손놓았던 취미를 되살리기도 한다. 과거에 대한 향수를 통해 고달픈 직장생활과 불안한 앞날에 대한 걱정을 달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일 홍콩의 톱스타 장궈룽(張國榮)의 죽음은 복고 풍조에 힘을 불어넣었다. 학창 시절 그의 영화를 보며 지냈던 추억이 옛 일기장처럼 펼쳐진 것이다. 일부 기업에선 이런 복고 바람을 새로운 마케팅 전략으로 활용한다.

KTF에서 모바일 게임을 기획하는 배태한(29)대리는 요즘 항상 싱글벙글이다. 지난해 콘텐츠로 도입한 추억의 오락실 게임들이 대박을 터뜨렸기 때문이다. 갤러그, 너구리, 1945, 인베이더, 방구차, 문패트롤 등 80년대 오락실 게임들이 다운로드 순위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모두 그가 학창시절 즐겨 하던 게임들이다. 배대리는 "지난해 우연히 오락실에 갔는데 내 또래의 직장인들이 많다는 것을 발견했다"며 "복고풍 게임에 대한 직장인들의 관심을 상품화한 것이 맞아들어 났다"고 말했다.

다임러크라이슬러코리아 허주연(33)차장은 곰인형을 직접 만든다. 재료를 사서 한 개를 만드는 데 보통 4~5시간이 걸린다. 이렇게 만들어진 곰인형은 가지런히 장식장에 올라 있다. 곰인형은 허차장의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가장 가까운 친구가 돼버렸다.

그는 "나만의 표정을 인형에 불어넣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돈을 주고 사는 것과 다르다"고 했다. 곰인형을 가끔씩 거래처 손님에게 선물한다는 그는 "어릴적 향수를 불러일으켜서 그런지 뇌물(?)효과가 확실하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시공사기술연구소 김정렬(32)팀장의 집에 가보면 방 하나가 로봇으로 가득차 있다. 그의 취미는 건담을 비롯한 복고풍 로봇 장난감을 모으는 것. 학창 시절 공부에 대한 부담과 부모의 성화 때문에 주저했던 소원을 이제야 이룬 것이다.

서울 어딘가에 로봇 태권V를 보관한 시설이 있을 거라 철석같이 믿었던 그의 성장기에 로봇은 상상력의 보고 역할을 해왔다.

김팀장은 "어린 시절 외계인들이 지구를 침략하면 로봇을 움직여 방어하겠다는 공상을 했다"며 "로봇 장난감을 조립하면서 집중력과 상상력이 높아져 웹사이트 기획 일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최근 로봇 장난감을 조립할 수 있는 작업실을 마련하기 위해 좀더 넓은 집으로 이사했다.

홍보대행사 비즈컴 남은지(31) 과장은 '불량식품'을 즐겨 먹는다. 회사 근처인 인사동에 들러 쫀득이, 쫄쫄이, 아폴로 등 복고풍 과자를 산다. 그는 인사동 주변에 추억의 군것질거리를 판매하는 가게가 속속 생겨난 게 한없이 뿌듯하다. 인터넷 구매로도 쉽게 살 수 있어 한번에 많이 사서 직장 동료들에게 나눠주기도 한다.

남과장은 불량식품을 즐겨 먹는 이유에 대해 "부모님 몰래 코묻은 용돈을 모아 사먹었던 기억이 난다"며 "예전에 욕심껏 먹지 못해 아쉽기만 했던 것을 여유롭게 먹는 데서 오는 짜릿함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KT 이병양(33)연구원은 1980년대 후반에 유행했던 보트 슈즈를 최근 구입했다. 백화점에 갔다가 추억의 보트슈즈를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산 것이다. 보트슈즈는 물에 접촉이 많은 선원들이 갑판에서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신는 신발이다.

이연구원은 "15년 전 대학 1학년 때 신었던 낡은 보트슈즈를 아직도 갖고 있다"며 "새것과 함께 신발장에 있는 것을 보니 학창시절의 추억이 다시 살아났다"고 말했다.

보트슈즈를 수입하는 팀버랜드코리아 강제우 사장은 "복고풍 캐주얼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면서 보트슈즈를 찾는 고객들도 늘고 있다"며 "고객 중 상당수가 직장인들로 학창시절의 추억을 되살리기 위해 이 신발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강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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