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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월드컵] 독이 된 네이마르의 눈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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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11일(한국시간) 브라질 대표팀 훈련장이 있는 테레조폴리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흘리는 네이마르(사진 왼쪽). 월드컵 기간 동안 네이마르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브라질 축구팬이 많았다. 척추 부상을 당한 네이마르가 빠진 채 1-7로 참패한 독일과의 준결승에서 브라질 팬들은 네이마르의 가면을 쓰고 응원했고, 네이마르만큼이나 크게 낙심했다. [AP=뉴시스, 로이터=뉴스1]

브라질 월드컵은 네이마르(22·바르셀로나)의 눈물로 시작해 눈물로 끝났다. 한 달 동안 브라질 축구팬은 네이마르와 함께 울고, 울고, 또 울었다.

 지난달 12일(한국시간) 상파울루의 과룰류스 공항을 통해 브라질에 입국해 한 달 동안 월드컵을 지켜봤다. 브라질 축구팬은 이번 월드컵이 네이마르를 위한 대회가 될 것이라 잔뜩 기대했다. 브라질 거리는 네이마르 스타일이 점령했다. 네이마르가 쓰는 힙합 모자와 선글라스는 10·20대 브라질 남자의 필수품이었다. 옆머리를 짧게 밀고 윗머리를 앞으로 날카롭게 모으는 네이마르의 헤어스타일도 유행이다. TV에서는 네이마르를 모델로 한 광고와 특집 방송이 쉴새없이 쏟아졌다. 브라질은 네이마르를 별명인 ‘조이아(jia)’처럼 애지중지하고 있었다. 조이아는 보석이란 뜻이다. 산투스 시절 보석을 항상 차고 다녀 생긴 별명이지만 이제 브라질 축구의 보석이란 의미로 통한다.

 지난달 13일 브라질 상파울루의 코린치앙스 경기장에서 열린 코스타리카와의 월드컵 개막전에 네이마르는 10번 유니폼을 입고 등장했다. 네이마르는 국가가 연주될 때 눈물을 흘렸다. 국가의 마지막 부분인 “브라질 그대는 따스한 어머니, 사랑받는 나의 조국”이란 가사 부분에서는 고개를 떨어트리고 눈물을 훔쳤다. 이날 네이마르는 두 골을 몰아 넣으며 3-1 승리를 이끌었다. 월드컵 데뷔전에서 두 골을 넣은 건 메시(27·바르셀로나)와 호날두(29·레알 마드리드)도 이루지 못한 대기록이다. 네이마르는 멕시코 전 때도 국가가 나올 때 눈물을 흘렸다. 브라질 언론은 ‘조국에 대한 애국심으로 똘똘 뭉쳤다’며 네이마르에게 찬사를 보냈다. 네이마르의 눈물은 브라질 월드컵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조금은 누그러뜨렸다. 브라질 거리에서는 노란색 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사람을 쉽게 볼 수 있다. 대부분 네이마르의 10번을 새기고 있었다.

 네이마르는 A조 조별리그 3경기에서 4골을 넣으며 브라질을 16강에 올려놨다. 칠레와 16강전에서 22세 청년 네이마르는 더이상 가슴에 쌓아뒀던 부담감을 억누르지 못했다. 칠레와 경기는 고전 끝에 승부차기로 이어졌다. 네이마르는 가장 책임이 큰 다섯 번째 키커를 맡았다. 2-2 동점에서 네이마르는 침착하게 페널티킥을 성공시킨 뒤 포효했다. 칠레의 다섯 번째 키커 곤살로 하라(29·노팅엄포레스트)가 실축하며 브라질이 승리했다. 그 순간 네이마르는 환호 대신 울음을 터트렸다. 그는 스콜라리 감독의 품에 안겨 펑펑 울었다. 그는 “고통스러웠다. 눈물은 기뻐서 난 것”이라고 했다.

 브라질 현지 언론은 이때부터 네이마르의 눈물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너무 큰 부담감에 제 기량을 펼치지 못할까 우려했다. 1990~2006년 브라질 대표로 뛰며 두 차례 월드컵(1994·2002) 정상을 경험한 베테랑 카푸도 걱정했다. 그는 “여러 선수가 우는 것을 봤다. 지금은 울지 말고 경기력에 집중해야 한다. 이번 대표팀은 너무 감정적이다. 우승을 하려면 감정보다는 이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스콜라리 감독도 선수들에게 가족과 보낼 시간을 줬다. 훈련장에는 심리치료사가 동원됐다.

 브라질은 지난 5일 8강전에서 콜롬비아를 2-1로 꺾고 12년 만에 준결승에 올랐다. 그러나 네이마르의 꿈은 8강에서 멈춰섰다. 후반 43분 콜롬비아의 수비수 카밀로 수니가(29·나폴리)가 네이마르의 허리를 무릎으로 찍었다. 네이마르는 그라운드에 쓰러졌고, 위중한 부상임을 직감한 뒤 흐느꼈다. 3번 척추 골절로 40~45일의 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수니가는 공개적으로 “미안하다”고 사과했지만 네이마르는 “내 꿈을 도둑 맞았다. 한 순간에 모든 것이 끝났다”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브라질 방송은 ‘네이마르가 진통제를 맞고 결승에 뛸 수 있다’고 호들갑을 떨었지만 사실과 달랐다.

 독일과 준결승에서 브라질 동료 선수들은 ‘네이마르 힘내라’라는 문구가 적힌 흰색 모자를 쓰고 경기장에 들어왔다. 국가 연주 땐 네이마르의 유니폼을 펼쳐 보였다. 팬들은 네이마르 가면을 쓰고 응원했다. 한마음으로 “네이마르를 위해 꼭 승리하겠다”고 다짐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1-7 패배. 브라질 축구 역사상 최악의 참패였다. 차라리 네이마르가 없어서 다행이라는 반응도 적지 않았다. 네이마르가 없었기에 그나마 다행이라는 거다. 네이마르는 브라질이 떨어지자 또 눈물의 기자회견을 열고 “부상을 당했을 때 하반신 마비가 될까 두려워 눈물을 흘렸다. 수니가를 증오하지 않는다”며 “이제 팀 동료인 메시가 우승하길 빌어 주겠다”고 말했다.

리우 데 자네이루=김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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