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한 잔 마시는데 절 백 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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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모시 도포에 「사」자 형의 유건으로 의관을 정제한 손님과 주인이 청초한 늦가을 하늘아래 청주 한잔을 권하고 받는데 1백번 가까운 큰절을 주고받으며 교유한다. 「술 한잔을 권하는데 손님과 수인이 1백 번의 절을 한다」(일헌지례 빈주백배)는 정중한 옛 음주예절이었던 「향음주례」절차가 한말 단절된 이래 70여 년만에 재현됐다.
한국청년유도회(회장 서정낭)창립 3주년을 맞아 10일 하오 서울 성균관명륜당 앞뜰에서 거행된 향음주례는 옛 선비들의 주도를 일깨워 주었고 고유전통이 깃들인 은백의 한국적인 음주「에티켓」을 정립하는데 많은 시사를 던져주었다.
향음서례란 원래 한서 『예기』에 따른 유사들의 음주예절로 한말까지 각 고을마다 전국 2백31개의 향교에서 연1회씩 예를 거행해 왔다. 이 예는 토속적으로는 젊은 선비들이 선배 노유를 모셔 대접할 때 술대접 「에티켓」이었다.
향음서례는 또 선비들이 출세하거나 관아와 교유를 트고자 할 때 연회의 성격을 띠면서 흔히 베풀어진 예법이기도 했다. 현대적으로는 일종의 사교「파티」와도 같은 성격을 띤 이 예법은 손님과 주인이 술을 권하면서 『시경』의 「녹명장」을 창으로 읊는 등 선비의 화민성속하는 예악을 갖춘 엄격한 주도였다.
절차가 복잡하긴 하지만 주객간에 절을 주고 받으며 자리를 바꾸는 등의 예를 갖추노라면 마신 술이 좀처럼 취하지 않아 술이 취하는 추태같은 것이 좀처럼 발생하지 않는 장점을 가진 훌륭한 「에티켓」이었다.
향음주례의 절차는 크게 13가지로 나누어지며 우선 주인이 손님을 청하면 주인과 손님은 이르는 데마다, 씻을 때마다, 받을 때마다, 줄 때마다, 끝날 때마다 절을 하여 지극한 존경과 감사를 표한다.
앉을 때는 상하가 있어 남향이나 북향일 때는 서쪽으로 위를 삼고 동향이나 서향일 때는 남쪽을 위로 삼는다.
빈객간의 절은 벼슬이나 학식에 관계없이 공경하는 사람이 먼저 절하고 서로 존경할 때는 같이 절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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