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겸의 『석천 한유도』발굴등|화제모은 예산 명현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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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우리나라의 옛 풍속화가운데 주인공의 용모가 분명한 예는 전무한 터인데 주인공은 물론 화가와 제작연대까지 명시된 채색의 그림이 한폭 나타나 화제룰 모으고 있다
창호지 한장 크기의 이 그림은 충남예산이 낳은 역사적 명현들의 영정·유품울 전시하는 자리에서 공개됐으며 화제의 주인공은 18세기중엽에 경상좌병사를 지낸 석천 전일상. 예산군대흥에 사는 그의 종손 전용국씨가 소장하고있는 것인데 석천이 물가 정자에서 호유하는『한유도』와 더불어 초상화까지 곁들여 한층 값진 참고자료로서 제시되었다.
예산문화원이 베푼 이고장의 명현전(11월1일까지 세종문화회관)은 마침 국상기간중이어서 많은 관람객을 불러들이지는 못했으나 이 분야에 관심있는 인사들에겐 매우 뜻있는 몇가지 자료를 보여줬다.
조선조 초기 김구의 자석매죽문일월연, 18세기초의 이숙가 쓰던 옥동거문고, 그밖에 귀한 초상화와 관문서등이 전시돼 아직도 각지방에 묻혀있는 많은 사료와 문화재의 발굴이 얼마나 소중하게 시행되어야 하는가가 좋은 본보기가 돼주었다.
그중 가장 획기적인 성과로 지목되는 전일상(1700∼53)의 초상화와(90×l42·5cm·깁에채색)와 한유도(87·5×1l9·5cm·종이에 채색)는 당대의 명화가인 부염재 김희겸의 작품으로서도 뛰어나 주목되고 있다.
영조때의 화원인 김희겸은 그림솜씨가 전신이라 할만큼 뛰어나 현감벼슬까지 주어졌는데 다만 그에 관한 기록과 작품이 아주 귀한 터였다.
문제의 한유도는 석천이 여름날 평복차림으로 정자의 누마루에 호기롭게 앉아 피서하는 모습을 「스케치」한 것이다.
머리 위쪽족 기둥에는 당상관 무반답게 패도를 걸어놓았고 왼손등에는 사냥매를 앉혔다. 마루에는 약간의 서책과 지필묵을 벌여놓았는데 한 여인이 장죽에 담배를 태워 올리는 옆에서 기녀가 가야금을 뜯는다. 누마루에 오르는 층계에는 술병을든 여인이며 수박·참외 과반을 든 여인이 늘어서 있다.
정자 아래서 반기는 두마리의 개는 지금 볼수없는 토종견이고 앞개울에서 맘을 씻기는 마부는 흡사 사천왕을 연장시키는 얼굴이다.
이곳 예산 인근에는 담양전씨의 오랜 씨족부락이 있으므로 이 그림 역시 향리의 정경이 아닐까. 화폭에는 『무진류월일제』라 묵서하고 김희겸의 도장이 찍혔으니 곧 영조24년 (1748) 석천이 49세때다.
석천의 초상화에는 낙판이 없지만 용모가 일치하고 또 채색을 쏜 기법까지 갈기 때문에 역시 김희겸의 작품으로 단정하고 있다. 그래서 이두사람의 교본은 평소에 매우 두터웠던것으로 해석되며 어쩌면 김희겸이 그와 동향일 가능성까지 추정케 하는 것이다.
18세기 중엽은 정환 조영우 심사정등 진경사생화가 두드러지게 출현한시대이나 풍속화로는 이렇다할 것이 없다. 정겸재의 제자로서 심현재의 좋은 점까지 갖추었다고 알려진 김희겸의 이 한유도는 현존하는 가강 오래된 풍속화의 하나라고 지목할만하다. 이종석<「계간미술」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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