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J Report] 둘둘 말리고, 훤히 비치고 … 비장의 무기 장착한 한국 IT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2면

LG디스플레이가 개발한 OLED 기반 플렉서블 디스플레이(왼쪽)와 투명 디스플레이(오른쪽). 플렉서블 디스플레이는 기존 곡면 디스플레이보다 더 진화한 ‘롤러블(말 수 있는) 디스플레이’로, 돌돌 말아도 화면을 구현하는 데 전혀 이상이 없다. [사진 LG디스플레이]

2054년 미국 워싱턴DC의 최첨단 범죄예측 수사기관 프리크라임(pre-crime) 센터. 팀장 존 앤더튼(톰 크루즈 분)는 두 손으로 눈 앞에 펼쳐진 대형 투명 디스플레이를 조작한다. 손의 움직임에 따라 투명 디스플레이 화면 속 장면이 확대되고 또 사라진다. 앤더튼 팀장은 첨단 범죄예측시스템에다 자신의 천부적인 감각을 더해 미래의 범죄자들을 체포해내면서 능력을 인정받는다. 하지만 어느 순간 자신이 살인 범죄자로 지목돼 쫓기는 신세가 된다. 전철 속에 숨어 도망가는 앤더튼 팀장의 눈 앞에‘USA투데이’가 나타난다. 언뜻 보면 종이신문처럼 보이지만, 실은 종이처럼 휘고 말리고 접히는 디스플레이로 만든 e-신문이다. 잠시 뒤 USA투데이 1면 톱기사가 바뀌면서 앤더튼 팀장의 사진이 나오고 ‘프리크라임센터가 자신을 쫓고 있다’는 제목이 뜬다.’ 2002년 개봉한 공상과학(SF)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한 장면이다.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SF영화 속에나 나올 법한 장면이 국내 기술로 현실화하고 있다. LG디스플레이는 10일 종이처럼 돌돌 말수 있는 18인치 크기의 디스플레이와 유리창에 화면이 나타나는 듯한 투명 디스플레이를 각각 내놨다. 소형 플렉시블(휘는) 디스플레이와 LCD 기반의 투명 디스플레이는 기존에도 수차례 개발됐지만,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기반의 18인치 플렉시블과 투명 디스플레이를 동시에 내놓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18인치 플렉시블 OLED는 100만 화소에 육박하는 HD급 해상도(1200×810 픽셀)로 OLED로는 세계 최대 크기다.

 중국 정보기술(IT) 기업들이 급성장하면서 한국의 삼성전자와 LG전자의 프리미엄 스마트폰 기술도 거의 따라잡았다. 그러나 한국 기업들도 만만치 않다. 중국 기업들이 완제품 형태의 하드웨어 기기를 추격하는 사이, 한국 IT기업들은 기존 완제품 전자기기 외에도 디스플레이와 배터리·모바일AP 등 부품소재 부문에서 또다른 첨단 기술의 방어벽을 쌓아올리고 있다. 중국기업에 완제품을 따라 잡히더라도 속에 들어가는 부품과 소재를 장악해 차세대 성장엔진으로 삼자는 전략이다. 19세기 미국 서부에서 뜨거웠던 ‘골드러시’에서 ‘금맥을 찾지 말고 청바지와 삽을 팔아라’는 명언이 나온 것과 같은 논리다.

삼성이 갤럭시노트 신제품과 함께 하반기 전략 상품으로 내세우고 있는 태블릿 PC ‘갤럭시 탭S(위)’와 웨어러블 기기 ‘기어 라이브(아래)’. [사진 삼성전자]

 LG디스플레이가 10일 공개한 18인치 플렉시블 디스플레이는 휘는 디스플레이의 최근 진화 시점을 보여주는 전형이다. 플렉시블 디스플레이 기술은 ‘벤더블(bendable:구부릴수 있는)→롤러블(rollable:돌돌 말 수 있는)→폴더블(foldable:접을 수 있는)’순으로 발전해간다. 휠 수 있는 디스플레이 소재도 개발이 어렵지만, 말거나 접어도 화면 안에 숨은 회로가 끊어지지 않게 해야한다. 폴더블 디스플레이 기기가 상용화되면 태블릿PC나 스마트폰을 종이처럼 접거나 구겨서 주머니에 넣을 수도 있게 된다.

 이번 LG디스플레이의 플렉시블 디스플레이는 곡률반경 30라디안(R)을 구현했다. 이는 패널을 반지름 3㎝의 원으로 말아도 화면이 나오는 데 지장이 없다는 뜻이다. 머잖아 커브드TV를 지나 두루마리(rollable) TV나 e-신문이 나오는 세상이 온다는 얘기다.

 LG디스플레이 관계자는 “이번 발표를 기반으로 2017년까지 투명하면서도 종이처럼 말 수 있는 60인치 이상 초고해상도(UHD)급 디스플레이를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고 밝혔다.

 LG디스플레이가 플렉시블 디스플레이와 함께 공개한 투명 OLED는 빛이 투과하는 비율인 투명도를 30% 이상으로 끌어올린 제품이다. 기존 LCD 기반 투명 디스플레이는 투명도가 10%대에 머물렀다. 회로소자와 필름 때문에 생기는 혼탁도를 2%로 확 낮춰 투명도를 끌어올렸다고 이 회사는 설명했다.

 강인병 LG디스플레이 연구소장은 “이번 작품은 산업통상자원부 국책과제로 산학연 36개 기관이 참여하고 있다”며 “초고해상도 화질로 40% 이상의 투명도와 곡률 반경 100R을 구현한 투명 플렉시블 디스플레이 개발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스마트폰의 두뇌에 해당하는 모바일AP 등 시스템반도체 개발에 부심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최신 스마트폰 갤럭시S5와 패블릿폰 노트3에는 퀄컴사의 스냅드래곤 AP시리즈가 들어있다. 스마트폰 시장 세계 1위의 자리에 있지만 정작 모바일AP 등 핵심 칩은 외국제품에 의존해온 것이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올 가을쯤 출시될 패플릿폰 노트4에는 삼성의 모바일AP 엑시노스를 탑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지금도 삼성은 중저가폰에는 자사의 모바일AP를 넣고 있지만 앞으로 더욱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렇다고 삼성전자가 완제품 하드웨어 비중을 줄이는 것은 아니다. 2분기에 상대적으로 부진한 실적을 거둔 삼성전자는 올 하반기 ‘노터블(NOTABLE)’로 반전을 노린다. 노터블은 노트(Note), 태블릿(Tablet), 웨어러블(wearable)의 합성어다. 스마트폰 대신 파생 제품 격인 갤럭시노트 등 대화면 스마트폰과 태블릿 PC, 웨어러블 기기 등을 앞세워 실적 부진을 만회한다는 전략이다. 삼성전자 무선사업부도 내부적으로 하반기 주력 영업 대상을 9월 출시 예정인 ‘갤럭시 노트4’와 프리미엄급 태블릿 PC ‘갤럭시 탭S’, 스마트 시계 ‘기어 라이브’로 선정했다.

 특히 10일 한국을 비롯해 미국·영국 등 전 세계 20개 국에서 동시 출시한 갤럭시탭S는 애플 ‘아이패드’를 제치고 태블릿 시장 세계 1위를 차지하겠다는 삼성의 목표가 담겨 있는 제품이다. 태블릿 제품으로는 2011년 이후 3년 만에 처음으로 능동형 유기발광다이오드(AMOLED·아몰레드)를 채택했으며, 갤럭시S5에 탑재한 홈 버튼 지문인식 기능도 동일하게 적용했다. 아몰레드는 2012년 신종균 삼성전자 정보기술·모바일(IM) 부문 사장은 “삼성 스마트폰의 아이덴티티(정체성)”라고 강조했던 기술로, 액정화면(LCD)에 비해 풍부한 색을 재현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도 “갤럭시S탭은 삼성이 지금까지 내놓은 어떤 태블릿PC보다 뛰어나다”며 “최고 수준의 고화질 동영상 용 태블릿 PC”라고 설명했다.

 웨어러블 시장에서도 지속적으로 신제품을 선보인다. 다양하고 차별화된 제품 라인업을 기획·제조·판매할 수 있는 역량을 바탕으로 새롭게 떠오르는 웨어러블 시장 주도권도 확보하겠다는 의지다. 지난달 말 구글 개발자 회의(I/O)에서 처음 공개한 기어 라이브는 올 상반기 내놓은 웨어러블 기기 ‘기어 2’에 비해 가격도 2만6000원 정도 낮은 22만4000원에 판매하고 있다. 삼성이 출시한 웨어러블 기기 중에선 처음으로 구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탑재했다.

 ‘노터블’ 이외에도 삼성은 헬스케어(건강관리) 기능이 가능한 모바일 플랫폼 구축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말 미국에서 공개한 손목밴드형 웨어러블 기기 ‘심밴드’는 심박수·맥박·호흡·혈압 등을 감지할 수 있는 센서를 활용해 수집한 건강 정보를 사물인터넷(IoT)망을 통해 클라우드 시스템에 전송할 수 있다.

 IT업계 관계자는 “삼성은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주요 부품을 자체 조달해 스마트폰, 태블릿, 웨어러블 기기 등 거의 모든 모바일 제품을 독자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세계 유일의 종합 전자업체”라며 “2분기에 재고정리를 한 요인이 있는 만큼, 3분기에는 어느 정도 실적을 회복할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최준호·김영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