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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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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가정주부 김영자씨 (35·회사원 염재현씨부인·소설가 염상섭씨며느리)댁은 구석구석 김씨 스스로「디자인」하고 땀흘려 만든가구들로 가득차 있다. 약장을 현대식 주택에 어울리도록 나지막하게 변형시킨 서랍장이며, 폐품을 감쪽같이 바꾸어 만든 각종집기들이 오히려 독특한 개성으로 이댁만의 자랑이 되고있다.
『8년전 결혼했을때 가구를 마음껏 장만할 경제적인 여유가 없어 직접 망치를 들었어요.그무렵 시장에서 팔던 동근 쌀통(높이60㎝·지름30㎝정도)을 이용해 만든 의자가 첫 작품이었어요.』 얇은「스펀지」로 쌀통을 돌돌감고 베이지색·밤색·주황색의 인조가죽을 「디자인」해 거죽을 씌운 인조가죽의자는 신혼가정에 썩 잘어울렸고, 김씨는 자기솜씨에 자신을 갖게됐다고 한다. 이 첫작품은 5년여를 썼으며 지금은 결혼한 동생에게 물려주었다. 집 수리때 못쓰게된 문짝에 다리를 만들어 붙이고「니스」칠을 해 자녀들(1남1여·유치원생)의 책상을 만들어 주었으며, 골목길에 버려진 자봉틀상자를 주워 신발장으로 만들어 쓰고 있다.
그동안 김씨가 만든 것을 모두 합치면 「집채만큼」이나 많지만 이웃 아주머니나 친지들에게 나누어주어 지금 남아있는것은 그 일부에 불과하다. 김씨 주위의 사람들은 김씨가 만든 소품하나라도 갖고있지않은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 『무거운 연장을 들고 일해야 하기 때문에 여자로서는 좀 무리이기도해요. 그렇지만 첫술에 만족하지않고 꾸준히 계속하다보니 요령도 생기고 「디자인」이나 재료에 대한 나름대로의 「센스」도 생긴것 같습니다.』 대학에서의 전공 (서울대미대응미과)이 많은 도움을 주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끊임없이 노력한 결과라고 한다.
『망치와 톱, 그리고 못만 있으면 간단한 물건은 얼마든지 만들수 있어요. 재주가 없다, 엄두가 안난다는 주부가 많은데 우선 주위의 조그만 물건부터 만들어 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붓글씨나 꽃꽂이에 못지않은 큰 취미이며 나아가 물건이 하나하나 늘어나는 재미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가 없을 거예요.』
10년 가까이 스스로 가구를 만들어온 김씨는 요즘은 주문을 받을 정도로 솜씨가 늘었다.친지들의 간곡한 부탁에 못이겨 삼층장·서랍장등 고전식 가구를 몇개씩 만들어주기도 했는데 시중상품보다 잘 만들어졌다는 칭찬이 더할수 없이 기쁘다고 한다. 이런 고급가구들은「디자인」만 김씨가 하고 제작은 전문목수들의 손을 빈다. 그러나 칠보장식이나 문고리등의 쇠장식은 김씨가 직접 만들어낸다.
서울을지로3∼5가에는「베니어」판·원목·쇠장식등 각종 가구용 부품가게가 몰려 있어 그곳을 기웃거리는 것도 큰재미중의 하나라고 한다. 「아이들 앞에서 직접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기 때문에 산 미술교육도 돼요. 색깔에 대해서도 밝아지고 엄마가 만든 물건이기 때문인지 특별히 아끼는것 같아 흐뭇하기도 하답니다.』

<이재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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