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기삼|남북분단이 빚어낸 깊은 내상 묘사|김용성의 『안개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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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최근에 남북분단 또는 윌남전쟁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부쩍 많아지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우리 문학의 풍부화를 약속하는 징후의 하나로 생각되면서 한편으로는 일종의 소재주의로 전락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갖게한다. 소재주의의 함정은 무엇보다도 사건설정의 유형화와 흉내내기에 가까운 유행풍조로 변질되는 분별력의 상실이라고 지적할 수 있겠다.
김용성의 중편 『안개꽂』(한국문학), 유현종의 『폐원의 여름·2』(문학사상), 김성동의『가숙의 땅』(문학사상) 『어머니와 개구리』(한국문학), 신상성의 『종이새 그 날갯짓』(문학사상) 둥이 그런 소재를 다룬 것으로 특히 주목되는 작폼들이다.
중편 『안개꽃』은 6·25때 생 이별한 아버지를 찾아나선 아들의 이야기다. 아들 이승호는 김일성 대학을 다니다가 동독으로 유학, 서독으로 탈출하여 그곳에 정착한 기사다. 그런데 이승호의 탈출동기는 <자유룰 찾아서>라는 상투화된 일반적 통념울 벗어나 단순히 <샅아남기 위해서>라는 반 「이데올로기」적인 것으로 요약된다.
사실상 민족분단의 비극을 소재로 한 대부분의 작품들이 겨냥하고 있는 관점이기도 하지만 6·25란 소수 직업정치가, 직업혁명가, 정치야망에 사로잡힌 정상모리배들을 제외하고 난다면 대부분의 남북한 국민들은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착색되지않은 상태여서 남북이 싸워야할 절실한 필연의 논리를 가질 수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주인공 이승호는 북한당에 고아로 버려짐으로써 처음엔 전사의 자식으로 대우받다가 뒤에는 반동의 자식임이 밝혀져 탈출하게 되지만 자식과 아내를 버리고 남으로 도피했던 그의 아버지는 결국 두고온 아내와 자식에의 통절한 회한때문에 정신이상자가 되어 부자가 다시 만나게 된다.
이들에겐 전쟁만이 무섭고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 전쟁의 치유될 수 없는 내상이 더욱 괴로운 것이다.
단편 『폐원의 여름·2』는 <낮에는 경찰세상 밤에는 공비세상>이 되던 전쟁중의 한마을 이야기로 되어있다.
밤과 낮의 단순하고도 짧온 변화가 정치적으로나 사상적으로 전혀 익숙하지 못한 마을 사람들에게 주는 의미란 전쟁보다 난해하고 어지러운 불안의 연속이 된다.
학살·방화·약탈·토벌과 보복의 악순환으로 이어져가는 밤낮의 변화는 참으로 비극적이며 극적인 상황이다. 세아들을 모두 이곳저곳으로 떠내보낸 늙은 어머니, 그리고 몇대를 내려온 고가가 타오르는 밤의 마을, 그곳을 결코 떠나지 않는 노모의 형상은 비극적 장중미를 더해 주기에 충분하다. 신인 김성동의 두 작품 『가숙의 땅』『어머니와 개구리』 역시 6·25로부터 전해진 정신의 내상과 삶의 현장에 먹칠처럼 남아있는 외상의 형태를 보여주는데 성공한 수작들이다. 『가숙의 땅』은 명문의 후예이면서 <난시에 책 잘못 읽은 죄>때문에 변을 당 한 아들내외와 그들이 남긴 한 청년의 완벽한 삶의 패배를 밀도있게 그려주고 있다.
『어머니와 개구리』에서는 좌익이라는 이유로 예비금속이 되어 처형당한 소년의 아버지때문에 공산군이 점령한 뒤엔 <애국자의 유가족>이 되고 소년의 어머니는 <위원장 동무>가 된다.
그러나 그들이 도주하고 난 다음엔 다시 소년의 어머니는 <빨갱이 년>으로 둔갑하고 그녀는 실성한다. 밤낮의 변화, 색채의 변화, 호칭의 변화에 따라 마을 사람들은 분명한 이유를 모르면서 죽거나 그 못지않은 고통을 겪는다.

<동국대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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