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분만에 계엄결의…심야에 국무회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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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부산직할시에 비상계엄을 선포하기 위해 심야임시국무회의가 열린 중앙청은 17일 밤 10시30분부터 바쁘게 돌아갔다.
이날 저녁 유신제 7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청와대 영빈관에서 박정희대통령이 공화·유정소속 전의원들을 위해 베푼 만찬에 참석했던 김성도 문공장관은 만찬직후 중앙청으로 가서 최규하 국무총리의 지시로 총무처에 임시 국무회의를 소집토록 통보.
최총리는 이날 조선「호텔」에서 이광요 「싱가포르」 수상을 위해 만찬을 베풀고 삼청동 총리공관에 돌아갔다가 다시 동정했다.
밤10시30분부터 전국무위원집에 비상연락이 취해졌으며 김문공장관이 신문사와 방송국에 전화로 이사실을 알렸다.
○…밤11시로 예정했던 국무회의는 일부 장관들의 도착이 늦어 10시30분에 열렸다.
10시정각 남재현 국방장관이 1착으로 중앙청에 도착했고 국무회의실에는 10분쯤뒤부터 정진우법제처장·김원기재무·부산에서 상경한 구자춘 내무장관등이 차례로 입장했고 홍성철 보사장관이 11시29분 입상하자 신현확 부총리를 제외한 전국무위원이 임시국무회의를 시작했다.
○…이희일 농수산장관은 11시20분쯤 「점퍼」 차림으로 노란색 「택시」를 타고 급히 중앙청에 도착했고 고재일 건설장관은 11시27분쯤 아들을 태우고 중앙청에 들어서 수위에게 아들을 숙직실에 기다리게 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홍보사장관은 연락이 잘 안된듯 11시15분쯤부터 「카·폰」으로 보사장관을 찾는 무선전화가 보도진 차량에도 잡혔다.
신부총리는 김문공의 발표가 끝난뒤인 11시57분 가장 늦게 도착하여 「카메라·플래시」를 받으며 국무회의실로 들어갔다.
○…국무회의는 최총리주재로 열려 10분만에 부산지역에 비상계엄선포를 의결했다. 부산에 내려갔다온 구내무장관이 「10·17」 부산소요사태에 대한 개황을 설명하자 이어 허국방장관이 비상계엄선포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이를 제안, 의결했다. 밤11시40분 김문공장관은 대기하고 있는 기자들에게 아무 설명없이 비상계엄선언 발표문을 읽었다.
김장관은 기자들이 「비상」국무회의라고 말하자 몇차례 되풀이 해서 「임시」 국무회의라고 정정했다.
김장관은 계엄지구에 대한 보도에 신중을 기하라고 당부하면서 『18일 아침방송에 「부산나오세」은 하고 직접 현지중계방송을 할수 없고 검열받은 내용만 보도해야 한다』고 보도요령을 예시.
0시40분쯤 마지막으로 중앙청을 나서던 김문공은 기자들의 질문공세에 『기한은 모른다. 빨리 해제되길 바란다. 밤이 늦었으니 내일 아침에 얘기하자』 고 답변을 회피하고 승용차에 오르려다최총리가 찾아 다시 3층 총리실로 올라갔다. 40여분 요담후 1시30분쯤 최총리·이규현 총리비서실장과 함께 총리전용 「엘리베이터」쪽으로 나온 김장관은 요담내용에 대해 함구하고 『상오10시이후 알게 될것』이라며 『자세한 것은 그때가서 얘기하자』고만 말하고 귀가했다.
○…이날 새벽 법제처장실에서는 정류자법제처장. 총무처의 최택원차관·서병기총무국장등이 계엄선포의관보게재, 국회동고절차등을 협의했다.
또 치안본부 정보1과장실에선 서정화 내무차관·손달용 치안본부장·유흥수 3부장등이 새벽2시20분까지 사태경위 발표문을 작성했다.
17일 밤11시부터 중앙청에는 중대발표가 있다는 긴급연락을 받고 30여명의 기자들이 모여 국무회의실 앞에 대기했으며 정복수위 3명이 회의실 출입문에 배치돼었었다.
과묵한 성격 군수통 개엄사령관 박찬철중장
부산지구 계엄사령관에 임명된 박찬철육군중장 (군수사령관)은 과묵한 성격에 숫자에 밝은 군수통이다.
53세인 박사령관은 오랫동안 국방부 군수차관보로 있으면서 한미군수협력체제의 기반을 다졌고 지난 2윌 군수사령관에 부임, 중장으로 진급했다.
육사7기로 48년 11월 소위에 , 임관되어 초급장교로 6·25에 참전했고 20년만인 68년 1윌 준장에 진급, 그뒤 5년만인 73년 1윌 소장으로 6년만인 지난 6월 중장으로 진급했다. 국방부 군수차관보를 맡기전 박사령관은 21사단장·2군수지원사령관·○군사령부참모장직등을 각각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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