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국봉의 서구순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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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중공 당주석 화국봉이 서구 4개국 순방길에 올라 있다.
화의 이번 여행은 중공 최고수뇌로서는 최초의 서방행이며, 화-등 체제「이데올로기」의 본격적인 대외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중국의 전통적인 대외인식은 이른바 중화사상이었다.
모택동이 집권할 당시에도 이점에 있어선 다를 바가 없었다. 미국과 서구는 「쇠퇴해 가는 제국주의」이며 소련은 「종이호랑이」이기 때문에 오직 자력갱생만이 중공의 나아갈 길이요 승리의 길이라고 맹신했다.
임표는 심지어 중공의 인해전술이 미소의 핵전력에 이길 수 있다고까지 강변했고, 4인조는 주은래 일파의 실용주의노선을 「양노」라고 까지 매도했다.
그러나 또 하나의 실용주의자 등소평 파가 집권했을 때 그들은 모택동30년 집권이 남겨놓은 것이라곤 오직 방대한 규모의 폐허와 빈곤과 무력뿐임을 솔직히 시인했다.
그들은 이 빈곤과 무력을 극복하는 길이 모 사상의 비신격화에 있으며, 자신을 더 이상 「중원」이라 망상하지 않는데 있음을 자인했다.
「중원」의 자존망대가 허물어진 중공에선 그 후 모 사상대신에 실사구시가 강조되었고, 4개의 현대화를 추진하기 위한 대 서방문호개방이 실천되었다.
자본조달과 기술혁신을 위해, 경영합리화와 무기현대화를 위해, 그리고 압도적으로 우세한 소련군사력의 포위망을 뚫고 나가기 위해 중공의 대미·대일·대서구접근은 정력적으로 추구되었다.
강력하고 부유한 「유럽」은 중공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공언과 함께 화-등 체제는 EEC와 「나토」의 강화를 극력 지지했고, 서「유럽」의 대소·대미 자주노선을 부채질했다.
이에 발맞추어 「히드」「슈트라우스」등 서구의 반「데탕트」파 역시 대소견제의 필요상 화-등 체제의 호소에 귀를 기울였고, 미·소「데탕트」체제를 「유럽」·중공의 제휴체제로 견제하려는 기운마저 대두했었다.
이러한 분위기를 배경으로 화국봉은 먼저 동구와 「발칸」의 반소파인 「유고」「루마니아」를 방문하여 「서방으로의 대장정」을 예고하는 한편 등소평과 군 간부는 화보다 한해 앞서 「프랑스」를 방문해서 앞으로 있을 협력외교를 사전 준비했던 것이다.
화국봉은 이번의 「대 서방 장정」을 통해 중공과 EEC간의 기술협력·무역증진·합작투자·문학교류 등 다각적인 협력과 교류의 길을 터 놓을 것이며 서 유럽」국민의 심중에 소련팽창주의에 대한 위기의식을 심어놓으려 애쓸 것이다.
그러나 서독과 소련간에는 이미 깊숙한 「데탕트」관계가 심화되어 있는 데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역시 「크렘린」과의 돈독한 경제·기술교류를 추진하고 있는 만큼 화의 열띤 반소선전이 과언 어느 정도의 실효를 거둘는지는 속단하기 어렵다.
서구와, 서구를 통한 반소통일전선구축에 착수한 화-등 체제의 외교공세가 과연 국제적으로 어떤 파급효과를 일으킬지 예의 주시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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