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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통성이 아쉬운 대종상 심사기준|이상회(연세대신문방송학과교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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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제18회 대종상의 시상이 끝났다. 약간의 의혹과 잡음이 뒤따르긴 했지만 수상작품의 선정은 비교적 잘 되었다는 것이 영화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의 일반적인 평이다. 그러나 이번 대종상의 수장작품들이 비교적 공정하게 선정되었다해서 대종상에 얽힌 문제점들이 깨끗이 해결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대종상의 심사기준과 방법에 석연치 않은 점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 대종상의 심사기준을 보면 「온 국민이 볼 수 있는 예술영화…」로 되어있는데 과연 온 국민이 즐길 수 있는 예술영화가 있을 수 있느냐는 것이 문제다. 영화의 예술성과 대중성은 엄격히 구분되어야 할 줄 안다. 영화를 수용하는 계층의 폭이 넓다해서 예술영화를 선정하는 심사기준에 영화의 「대중성」을 전제할 수는 없지 않은가. 문공부와 영화진흥공사가 매년 우수영화를 선정하여 대종상을 시상하는 목적은 국산영화의 질을 향상시키고 영화예술의 발전을 촉진하는데 있는 줄 안다.
그렇다면 「예술성」과 「대중성」이라는 이율배반적 심사기준을 설정정한 것부터가 잘못이다.
대종상의 심사방법에도 문제점 없지 않다. 듣기로는 복잡한 심사과정을 통해 대통령상을 결정한 후 총리상을 차점작품으로 결정하지 않고 처음부터(원점에서) 다시 투표하여 뽑았다고 한다. 그 결과 대통령상을 투표할 때 3위권에도 들지 못한 작품이 총리상때는 2위가 되었다. 그렇다면 대통령상의 심사기준과 총리상의 심사기준이 다르다는 것인가.
혼선이 빚어진 원인은 영화의 「예술성」과 영화의 「목적성」내지 「시의성」을 혼돈했기 때문인 것으로 본다.
올해가 어린이의 해이기 때문에 어린이영화를 정책적으로 권장할 필요가 있다면 우수어린이 영화에 줄 수 있는 상을 잠정적으로 신설하여 응분의 보상을 할 수 있지 않은가. 그뿐 아니라 우리나라가 처해 있는 상황적 조건을 감안한다면 우수 반공영화의 제작을 정책적으로 권장하는 것이 마땅하다. 다만 예술성·목적성·국책성·시의성을 동시에 영화심사기준으로 삼을 때 혼란이 불가피해진다는 사실을 지적해 두고 싶다.
설혹 대종상이 예술영화에만 주는 상이 아니고 다 목적성을 띤 상이라 하더라도 출품작품을 목적별로 심사하여 그 기준에 따라 포상을 하면 된다. 반공영화의 경우 반공성이 일차적 기준이 될 것이고 어린이영화의 경우 어린이정서함양과 선행권장이 그 기준이 되어야할 것이다.
그리고 모호한 기준에 의해 선정한 최우수 영화와 우수영화에만 외화수입「쿼터」를 줄 것이 아니라 국책영화·반공영화·어린이영화 등에도 외화「쿼터」를 배정한다면 「쿼터」를 따기 위한 과열경쟁도 막을 수 있고 또 예술영화에 시상되는 최우수 및 우수영화상의 권위도 살릴 수 있을 것이다.
심사위원 구성에 있어서도 올해 심사위원 30명중엔 이례적으로 언론인이 9명이나 들어있고 그밖에 교수, 문화·사회각분야 인사가 차지, 영화인은 4명에 불과했다.
집행당국은 심사에 공정을 기하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오히려 영화계에선 책임소재를 흐리게 하는 방책이 아니냐는 얘기도 있었다. 또 대종상의 원천적인 개선책은 외화「쿼터」제를 없애는 것이 영화계의 공통적인 의견인 것 같다.
회화「쿼터」제는 국산영화를 보호하고 외화의 낭비를 막기 위해 만든 제도로 안다. 그러나 외화「쿼터」가 영화사의 영리추구수단이 되어 영리적 흥행성이 약한 외국의 예술영화는 거의 수입되지 않고 있다. 그 한가지 예를 들면 「베리만」의 그 많은 영화중 단 한편이 국내에서 상영된 일이 없다. 50년대의 영화감각으로 70년대의 영화를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외국예술영화의 내용과 기법은 달라지고 있다.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되지 않기 위해서도 「쿼터」와 관계없이 외국의 예술영화를 수입할 수 있는 길을 제도적으로 열어 주어야한다.
끝으로 예술영화에 관한 한 규제와 검열의 기준을 완화하는 신축성을 보이라고 부탁하고 싶다.
지나친 노파심에서 검열의 촉각을 곤두세울 때 예술적 창작의욕은 위축되고 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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