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출초를 걱정한다는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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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EEC나 한국 등 소위 일본의 출초국들은 그들의 구두쇠 거래선에 대해 무엇을 해주기를 기대하지는 않는다. 다만 무엇을 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것은 매우 단순한「게임의 룰」과도 같은 것이다. 국제간의 이해가 착잡할수록, 무역거래상의 불화와 반목이 고조될수록, 오히려 「게임의 룰」은 더 절실히 필요하며 더 성실히 지켜져야 하는 것이다.
특히 「게임」의 당사자가 세계무역질서에 영향이 큰 거대경제일 경우 보다 성실한 「룰」의 준수와 탄력성의 유지가 세계시장의 안정에 불가결한 전제가 된다.
특히 강조해야할 것은 지난 두 차례의 석유파동이 무역평화시대의 사이좋던 경기방식을 송두리째 바꾸어놓았다는 사실을 부인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경기방식이 달라졌다해도 한가지 변할 수 없는 불문율은 오늘의 개방사회에서 어떤 경제단위도 자족적 순환체계를 확립할 수 있을 만큼 「독립적」일 수 없다는 사실이다.
세계는 그만큼 상호의존도를 높이고 있다. 석유파동의 진정한 교훈은 바로 여기에 있다. 지난해 이후의 「파리」·「본」·동경정상회담은 바로 이 같은 교훈의 상호확인이외에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일본은 호혜와 공동번영이라는 원칙의 확인과 실천사이에서 크나큰 괴리를 보여줌으로써 미국과 EEC는 물론 많은 개도국들마저 실망시켰다. 행정지도와 관세·비관세장벽은 여전히 높고, 요지부동이며 무역흑자의 누적추세는 인위적인 삭감의 노력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일부 외신보도와 같이 일본정부가 국제무역마찰을 축소하기 위한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면 그들은 지금 그것을 불가피한 명제로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확대일로의 무역불균형이 오랜 기간 방치되어온 한일교역 관계에 비추어 우리는 일본의 이 같은 움직임이 얼마만큼의 진실성을 바탕하고 있는지 가늠하기 어렵다.
그들이 조정하려는 대외관계가 어떤 것이며 그 조정의 심도가 어디에까지 이를지도 짐작하기 어려우나 진정한 대외관계의 조정은 오로지 상호이익과 협조의 기반위에선 실질성을 수반할 때 비로소 의미를 가질 것이다.
적극적인 구매사절단의 파견이나 대일 판매사절단의 초청도 무역마찰의 해소에 기여할 것이나 그보다는 우선 선택적이며 차별적인 각양의 무역제한을 없애는 노력이 더욱 긴요함을 강조하고 싶다. 특히 대일 무역역조가 l대 2·3에 이른 한국으로서는 관심품목의 차별적·고율관세나 특혜효과없는 특혜관세율의 인하를 통해 보다 보편적인 무역「룰」을 확립하도록 촉구할 당연한 권리를 갖는다.
일부 1차 산품이나 생사 등에 적용되고 있는 수입사전승인이나 창구일원화, 자율규제 등 각종 부당한 비관세장벽의 철폐도 차제에 적극적인 교섭과 진전이 있어야한다.
70년대 이후 자동차·정밀공업을 제외한 전 산업부문의 생산성이 떨어지고 있는 일본으로서는 보호와 장벽이 아닌 경쟁과 개방으로 노동생산성의 반전을 기대하는 것이 더욱 현명할 것이다.
일본이 우려해야할 것은 실업이 아니라 노동생산성의 하락이며, 이는 자본준비율의 제고와 과감한 산업이전을 통해서만 가능함을 다시 한번 지적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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