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신호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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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신호등의 모양은 나라마다 다르다. 화란의 「암스테르담」에서는 역사다리꼴로 적신호가 유난히 큰 짱구형이다.
만사안전주의의 서독에선 아예 적을 두개 달아놓고 있다. 미국에도 붉은 신호등만을 크게 한게 있다.
「제네바」의 신호등은 동화책에 나오듯이 네모꼴·세모꼴·동그라미등 모양까지 달리하고 있다.
신호등을 단 전용기등의 빛깔도 나라에 따라 다르다. 「제네바」에서는 백색, 「로마」는 심록색, 「런던」은 백과 흑의 얼룩무늬, 「마드리드」는 적과 백의 얼룩무늬등으로 다양하다. 화란에선 아예 신호등에 흰 배판을 붙이고 있다. 「파리」에서는 운전자의 눈높이에 작은 보조신호등을 따로 달기도한다.
큰 도로한가운데 또 하나를 따로 달아놓은 도시도 많다. 거리 네귀퉁이에만 신호등이 달린 것은 대도시중에서는 서울뿐이다.
신호등의 모양이며 위치는 달라도 만국에 공통한 것은 청·황·적의 색깔이다.
더 정확히는 「GO」의 표지는 청이 아니라 녹색이다. 그러나 성미가 급한 운전자들은 청신호가 미처 떨어지기도 전에 발진하는게 보통이다.
이것을 「플라잉」이라고 한다. 이상하게도 국민성의 차이가 나타난다. 질서와 규칙을 잘 지킨다는 서독 「슈투트가르트」의 「드라이버」들은 청신호가 떨어지기 1.27초전에 발차한다.
「런던」에서는 0.37초로 늦다. 동경은 가장 성미가 급하여 1.84초나 앞서나간다. 이 점에 관한한 서울의 「드라이버」들도 별로 뒤지지는 않을 것이다.
「런던」의 「드라이버」가 느림보라서 「플라잉」을 덜하는 것도 아니다. 청신호에 대한 인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서독에서는 청신호만 떨어지면 무조건 달릴 수 있다는 「권리」가 강조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교통사고율도 높다.
「런던」에서는 그렇지가 않다.
그곳에서는 청신호때 앞에 아무것도 걸리는게 없으면 나가도 좋다는 뜻으로 풀이되고 있다. 「나가라」는 것과 「나가도 좋다」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런던」에서 「버스」사고가 35년동안에 단 5건밖에 없는 까닭도 이런데 있다.
최근에 청주의 두 교사가 장님·노약자들을 위한 새신호등을 개발했다. 당국에서 짐짓 궁리했어야할 일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신호등이 완벽해도 그게 제대로 켜지지않으면 소용이 없다.
가령 붉은등의 남은 시간을 알게 된다면 서울의 「드라이버」들은 「플라잉」에 악용할 위험이 더 많아진다.
뭣보다도 맹인과 노약자도 충분히 큰 길을 횡단할수 있도록 청신호의 시간을 늘리거나 큰 길중간에 외국처럼 안전도를 설치해놓거나 하는 고려가 앞서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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