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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중국, 唐 제국주의와 宋 선린우호 모델 혼재”

중앙일보

입력

미국 하버드대의 최고 중국전문가인 마이클 푸엣(50·중국사학과·사진) 교수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에 즈음해 한국을 찾았다. 하버드대에서 ‘동양정치사상’ 강좌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푸엣 교수는 중국의 한국 중시 외교에 대해 “그만큼 한국이 아시아에서 차지하는 전략적 가치가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시 주석이 북한에 앞서 한국을 먼저 단독방문한 것을 두고 한 말이다. 푸엣 교수는 “부패 척결과 효율적 정부 운영이라는 목표를 가진 시 주석은 개혁적 리더십의 소유자”라고 평가했다. 중국 내 개혁을 위해서는 주변국과의 외교관계도 적절히 활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진(秦)나라 통일 이후 벌어진 비극의 역사 속에서 새로운 국가 건설을 위한 이상을 제시해준 한(漢)나라 모델은 지금 이 시점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푸엣 교수는 경희사이버대학교 인터내셔널 스칼라(해외 석학) 교수로 초빙돼 후마니타스칼리지 신은희 교수와 ‘동아시아 종교와 영성’이라는 주제로 여름학기 수업을 강의하고 있다. 지난 2일 푸엣 교수를 만나 중국의 현재와 미래를 조명해 봤다.

-시 주석 방한이 어떤 의미가 있으며 중국의 동아시아 전략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중국 정부는 한국을 중요한 전략적 파트너로 생각한다. 이번 방문도 이런 인식에 기반해서 나온 행보다. 외관적으로 중국은 강대국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내적 긴장감을 갖고 있다. 이런 문제도 외교를 통해 풀 수 있다고 여긴다. 중국은 독립적인 문제 해결 능력을 가진 국가로 부상하고자 한다. 중국 정부는 한국이 아시아 지역에서의 균형자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

-지금의 동아시아는 합종연횡이 활발했던 중국 춘추전국시대 말기를 연상케 한다. 중국은 한국 등 아시아 주변국들에 친성혜용(親誠惠容·친하게 지내며 성의를 다하고 포용하며 더불어 지낸다는 뜻)으로 다가간다. 미국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 중시(Pivot to Asia) 정책’은 올바른 방향에서 선택된 것인지,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는지 평가해달라.
“미국과 중국 같은 강대국 사이의 외교정책은 항상 충돌을 일으킬 수 있는 잠재력이 얼마든지 있지만 오바마의 아시아 중시 정책은 지금까지는 성공적이라고 본다. 중국이 미국과의 관계에서 취할 수 있는 모델은 여러 가지가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당나라의 경우 제국으로서 모든 국가를 컨트롤했지만 송나라는 다른 주변 국가와 동등한 관계를 맺었다. 중국은 미국과의 관계에 있어서 균형을 맞추고 동등한 경제 관계로 발전시켜 나가려는 아이디어를 갖고 있다고 본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군국주의·제국주의적 수단을 마다하지 않는 모습도 보인다.”

-시 주석 체제가 전임자인 후진타오 때와 비교해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후와 비교해서 시 주석은 대내적 개혁에 몰입하고 있다. 이것이 외교에도 영향을 준다. 시 주석은 더 많은 강대국이나 주변 국가들과 적극적인 관계를 맺으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시 주석 리더십의 핵심은 무엇인가.
“부패 척결이나 효율적 정부 운영에 초점을 맞추는 개혁적 리더십이라고 말하고 싶다. 필요하면 적절히 민족주의적·제국주의적인 은유와 수사를 사용한다. 그러면서도 내부 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국은 공산당이 주도하는 메리토크라시(능력주의) 국가로 효율성이 있다고 강조하고 있는데 그 근거는 무엇인가.
“중국 정부는 현재 인재등용 중심의 능력주의로 개혁하려 하고 있다. 정부개혁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다. 중국은 민주주의와 권위주의적 요소 두 가지가 공존할 수 있다는 잠재적 모델을 보여준다. 이런 의미에서 중국형 능력주의라고 할 수 있다. 미국형 민주주의 모델이 능사는 아니다.”

-비민주주의적인 이런 체제가 지속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
“어떤 종류의 다양한 인재를 쓰느냐에 미래가 달려 있다. 대중이 긍정적으로 반응하도록 만든다면 지속 가능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얼마나 성공적인 능력주의 모델을 만드느냐가 중요하다. 성공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중국엔 최근 들어 테러와 집단시위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사회불안이 가중되고 있는데 그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이런 양상을 보이는 것은 여러 가지 권위주의적 정부의 잔재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漢)족 중심의 민족주의에 기인하는 바도 크다. 중국은 기본적으로 다민족·다문화주의를 표방하지만 사실 중국 내부를 움직이는 힘은 한족 중심의 민족주의에 있다고 본다. 경제나 사회적 압력을 어떻게 슬기롭게 극복하느냐에 중국 미래가 달렸다.”

-맹자는 중국 역사의 특징을 ‘일치일란(一治一亂)’이라고 했다. 안정기와 혼란기를 번갈아가며 겪었다는 뜻이다. 현재 중국 공산당 정부는 문화혁명이라는 혼란 시기를 거치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비교적 평화시대를 누리고 있다. 새로운 혼란기가 닥칠 가능성은 없나.
“맹자의 일치일란은 지금 이 순간에도 작동할 수 있는 것이다. 한 국가가 균형감을 상실했을 때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느냐가 중요하다. 복고주의·민족주의·제국주의라는 권위주의적 방향으로 돌아갔을 경우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 그러나 중국형 능력주의가 성공적으로 정착하고 민주적인 의사반영을 하게 되면서 환경·복지 등 문제에 집중,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가는 쪽으로 갈 경우에는 좋은 성과가 나올 것이다.”

-제자백가 시대가 끝나고 진이 통일한 이후 중국에서는 사상과 철학의 다양성이 쇠퇴했다. 사실상 공산당 일당이 통치하고 있는 지금 체제에서 사상철학의 자유는 매우 제한돼 있다. 창의력이 강조되는 이 시대에 획일화되고 있는 중국의 지속적인 발전에 한계가 있지 않나.
“동의한다. 오늘날 중국 정부는 진과 한나라 같은 다양한 국가적 경험을 하고 있다. 권위주의적인 진나라와 같이 분서갱유를 통해 잠재적 대항자들을 살상하는 시대도 있었다. 그러나 한나라의 모델은 인재를 등용하고 철학논쟁을 벌이면서 지성적·문화적 사회를 만들려고 했던 문화 르네상스시대라고 볼 수 있다. 시 주석은 문화사회를 분명히 추구하고 있고 사상 발전까지 이뤄 이를 경제 발전으로 연결시키려 한다. 한국이 추구하는 창조경제와 비슷한 것을 달성하려 하고 있다. 동시에 민족주의·제국주의적인 것은 절대 포기 않을 것이다. 궤도가 한쪽으로 너무 균형을 잃으면 중국사회는 불안해질 것이다. 그것을 시 주석이 알기 때문에 이런 요소를 적절히 배합해서 성공적인 국가경영을 하려 노력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최근의 중국은 대국굴기의 패권시대에 접어든 것 같다. 실제로 남중국해·동중국해에서의 중국과의 영유권 분쟁 등으로 주변 나라들은 불안해하고 있다. 공생할 수 있는 방법은.
“정말 그렇다. 영토분쟁이 어렵고도 위험한 상황을 맞고 있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자극적인 결과 중심의 언론 플레이나 중국 정부의 권위주의적이고 군국주의적인 그러한 조치가 아니다. 중국 내부에서는 상당히 다른 목소리와 관점들이 있기 때문에 이런 다각적인 대화를 포함시켜 함께 토론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한국 정부도 나름대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유가와 법가, 노장도가(老莊道家)와 음양오행가(陰陽五行家)를 아우르는 사상을 집대성했다고 평가되는 회남자를 깊이 연구한 걸로 알고 있다.
“현대 중국사회에도 적용이 가능한, 시기적으로 적절한 주제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온고지신(溫古知新)’이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 수 있고 다양한 사상들을 통합해 낼 수 있기 때문에 미래 중국사회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들이 담겨 있다.”

한경환 기자 helmu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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