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명으로 얼룩진 소『발레외교』|예술활동에한계느껴|오래전부터탈출계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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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24일하오5시가 조금 지난「뉴욕」「케네디」국제공항의「팬암·터미널」.승객1백14명을 태운「모스크바」행 소련국영항공기「아에로플로트」기가 활주로를향해 서서히 미끄러져갔다.
공항관제탑의 이륙지시를기다리며 가속하고 있던 여객기에 엉뚱한 명령이 떨어졌다.
『이륙을 연기하고 출발점으로 귀환하라!』
미연방이민국(INS)이 국무성의 지시를 받아 이민법 제2백15조를 발동,망명 무용가「알렉산드르·고두노프」의 아내「루드밀라·블라소바」의 자의출국여부를 가리기위해 이륙직전의 여객기의 발을 묶어버린 것이다.
「케네디」공항에는 삼엄한 경계망이 쳐지고 여객기밖에는 INS와 경찰의 자동차로 재갈을 물렸다.
국무성과 이민국 관리들은 2시간 넘게 소련관리들과 입씨름을 벌인 끝에 함께 여객기에 올라「블라소바」를 만났다.
『나는 남편을 사랑한다.그러나 남편은 미국에 남겠다고 결정했고 나는 떠나기로 결정했다』는 성명을 발표했던「발레리나」「블라소바」는 자신의 의사에 따라「모스크바」로 돌아간다고 침착하게 세번씩이나 말했다.
그러나 미국관리들은「블라소바」가 소련 비밀경찰(KGB)의 감시를 받고있는 상태에선「자의」여부를 가리기 어렵다고 판단.「블라소바」가 비행기에서 내려 면담하기를 요구했고 소련측은 이 요구를 거절했다.
남편의 망명사실을 전해들은「블라소바」는 투숙중이던「뉴욕」시내의「메이플라워·호텔」방에서 흐느껴울었다는 것.
「블라소바」는 여객기의 이륙시간 직전에 8명의 소련인의 호위하에 비행기에올랐었다.
10시간만에 미국인 승객 30여명이 비행기에서 내렸고 그때까지「엔진」을 걸어놓고 있던 소련조송사도마침내「스위치」를 껐다.
4일간의 끈질긴 자유의사확인요구에 소련측이 마침내 동의, 27일 미측은 공항활주로내 이동휴게실서 면담한결과 그녀가 완전한 자유의사로 귀국을 결심했음을 확인하고 탑승기의 이륙을 허용했다.
미소간에 중대한 외교전쟁을 몰고온 여객기 억류사건은 지난22일「뉴욕」의「링컨·센터」에서 공연중인 소련의「볼쇼이·발레」단의 인기 남성무용수「고두노프」가「뉴욕」의 TNS에 망명을 요청하고 이튼날 미국정부가 이를 허가함으로써 빚어졌다.
「뉴욕」의「발레」계에선「고두노프」가 상당히 오래전부터 망명을 준비했으며 부인「블라소바」가 소련의 KGB요원이기 때문에 혼자 망명했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그러나「고두노프」자신은그 소문을 일축하고 부인의 구출을 미국무성에 호소했다.「고두노프」는 부인과 동석한다면 소련관리들을 만날 용의가 있다고 말했지만 소련측에 의해 거부됐다. 소련측은 이미 잃어버린「고두노프」를 포기하고「블라소바」라도 데려가기로 한 것이다.
「고두노프」의 망명은 지난61년「레닌그라드」의「키로느·발레」단「루돌프·누레예프」와「나탈리아·마카로바」(초년).「미카일·바리시니코프」의 망명에 이어 4번째다.
「리가·발레」학교에서 수업한「고두노프」는 71년「볼쇼이·발레」단에 입단,『백조의 호수』에서「지그프리트」역을 맡아「데뷔」했다.
73년「모스크바」국제「발레」대회에서「바체슬라프·고르디예프」.「나디츠다·파플로바」와 함께 1등을차지해 재능을 인정받았다.
이「트리오」는 그해「뉴욕·메트러폴리턴·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 관중을 매료시켰다.
「고두노프」는 망명요청을하면서 『예술생활에 구속감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그이유를 설명하고 미국에서 새로운 무용분야를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미국「발레」계는 자유분방한「고두노프」의 행적이 진짜 이유일 것으로보고 있다.
비록「볼쇼이·발레」단이 세계 최정상에 올라있고 소련기준으로는 비교적 예술의 자유가 허용되고, 물질적으로도 상당한 대우를 받고있다고해도「로크·제너레이션」에 속하는「고두노프」의 예술성은 소련예술당국의「당근으로 당나귀를 꾀어가는식의 정책」에 큰저항을 느꼈으리라는주장이다.「고두노프」는 지난74년 해외공연이후 4년간이나 출국금지를 당했다. 해외공연중 마치「히피」같은 행동으로 품위를 떨어뜨렸다는것이 그 이유였다.
평론가들은「거드노프」가「누레예프」나「바리시니코프」처럼 고전적이거나 섬세하지 못하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아무렇게나 빗어넘긴 금발머리,「스피디」하고 활기찬 표현력은 특히 젊은이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뉴욕」에서 4주째 공연중인「볼쇼이·발레」단은「고두노프」의망명에도 뷸구하고「시카고 와「로스앤젤레스」공연을 강행할 예정이다. 미소간의「발레」전쟁은 일단 소련의 승리로 끝났으나 새로운 긴강을 몰아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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