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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철피아 비리, '악마의 유혹' 뿌리를 뽑아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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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철피아(철도 마피아)’ 비리 수사가 정치권 게이트로 비화될지 주목되고 있다. 세월호 참사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돼온 관피아(관료 마피아) 척결을 목표로 시작된 이 수사가 중요한 기로에 서게 된 것이다. 검찰은 좌고우면하지 말고 의혹의 핵심을 향해 파고들 때다.

 철도 납품 비리로 수사선상에 올랐던 김광재 전 철도시설공단 이사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은 지난 4일이었다. 검찰은 그제 “철도 레일체결장치 납품업체 AVT사 측의 부탁으로 김 전 이사장에게 수천만원을 전달했다”고 진술한 권영모 전 새누리당 수석부대변인을 변호사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했다. 검찰은 AVT사 고문을 맡았던 권씨가 AVT의 로비 창구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수사를 정치권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수사팀은 AVT사가 2012년 이후 호남고속철도 궤도 공사 등 철도시설공단이 발주하는 각종 공사에 납품업체로 선정되는 과정에서 로비를 벌인 혐의를 잡고 수사를 진행해왔다.

 정치권 로비 의혹을 더욱 키우고 있는 건 김 전 이사장이 남긴 유서다. 김 전 이사장은 유서에 “정치로의 달콤한 악마의 유혹에 끌려 잘못된 길로 가게 됐다”고 적었다고 한다. 그가 정치권 인사들로부터 압력과 청탁을 받았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재력가 송모씨 살인교사 혐의를 받고 있는 김형식 서울시의원도 AVT사로부터 수천만원을 받은 정황이 포착돼 수사를 받고 있다. AVT사가 권씨와 김 의원 등 복수의 대리인들을 앞세워 정·관계에 전방위 로비를 벌였다는 의혹은 이제 반드시 수사로 규명해야 할 대상으로 떠올랐다.

 검찰은 이권에 개입한 정·관계 인사들을 밝혀내 그들을 전원 법의 심판대에 세워야 한다. 김 전 이사장이 언급한 ‘악마의 유혹’이 결코 달콤하지 않음을 분명하게 알게 해줄 필요가 있다. 고속철도는 수백 명 이상의 승객을 고속으로 실어나른다. 수많은 생명이 걸린 사안이다. 300명에 가까운 생명이 희생된 세월호 참사를 거치며 우리는 정·관계의 유착 고리를 끊는 것이 얼마나 시급한 과제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국민의 안전과 관련된 분야의 부정부패에 대해선 단호하고 엄격하게 메스를 대는 것이 제2, 제3의 세월호를 방지할 수 있는 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