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매부리코' 공식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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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홍주연

『헨젤과 그레텔』을 비롯해 서양 동화책에 등장하는 마녀는 하나같이 매부리코 할머니로 그려져 있다. 『백설 공주』의 경우, 책 본문에는 계모 왕비가 사과장수 할머니로 변장했다고 나오는데도 삽화에는 매부리코의 마녀로 그려져 있는 경우가 많다. 왜 마녀는 다들 매부리코일까? 디즈니 만화영화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유럽인들은 숲 속에 혼자 사는 마녀의 코를 매부리코로 생각했다. 왜 그랬을까?

유럽인 중에 매부리코는 드물었다. 인류를 크게 세 가지 인종으로 나눠 보면 니그로이드(흑인), 몽골로이드(황인), 코카소이드(백인)이다. 코카소이드에 속한 유럽인은 다시 북유럽·지중해·알프스·디나르·동유럽 인종으로 나뉜다. 그중 알프스 디나르 산간지역에 주로 사는 디나르 인종이 매부리코다. 눈썹이 짙고 눈동자와 피부색이 어두워 상대적으로 어둡고 음울한 인상으로 보인다. 디나르 인종은 혼혈이 흔한 중부 유럽에서도 많이 보이는데, 그 지역에 거주하는 다른 유럽인에 비해 특이한 외모를 가졌기에 골상학(서양의 관상학)적 편견의 대상이 되었다. 사람들은 대개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흔한 모습은 친근하게 생각하고, 외부인들의 것은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매부리코와 짙은 눈썹, 어두운 색의 피부와 눈동자가 숲 속에 혼자 사는 마녀의 이미지에 덧씌워졌다.

하지만 마녀가 매부리코가 된 결정적 이유는 유대인 차별에 있다. 유대인들 역시 매부리코였다. 기독교를 믿는 서구인들은 유대인들이 예수를 처형했다는 이유로 유대인을 멸시하고 차별했다. 나라 없이 떠도는 유대인들은 토지에 투자할 수 없어 고리대금업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기독교에서 금하는 이자놀이를 한다는 이유로 더욱 박해받았다. 이교도는 무조건 기독교도의 아이를 잡아먹는다는 편견으로 아이를 납치해 잡아먹는다는 혐의도 씌웠다. 유대인의 안식일인 금요일의 집회를 가르키는 ‘사바트’를 마녀의 집회를 부르는 말로 쓰기도 했다. 중세를 거치며 마녀에 유대인의 이미지가 결합돼 갔다. 그래서 마녀의 코는 매부리코로 알려져, 매부리코를 가진 죄없는 여성들이 마녀 재판에 불려가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반유대주의가 절정에 달해 최악의 학살 사태가 벌어졌다. 이제 유대인들은 생명의 위협을 일상적으로 느끼게 됐다. 나치는 반유대 선동 포스터에 유대인의 매부리코를 과장해 그려 넣었다. 매부리코 때문에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것을 숨길 수가 없자 코 성형 수술을 받기 시작했다. 수술 탓으로 사망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히틀러의 가스실을 피해 기꺼이 수술대 위에 올랐다. 이렇게 코 성형 수술 발전사에는 유대인 차별의 슬픈 역사가 있다.

지금은 히틀러가 집권하던 시대가 아니다. 하지만 외모 차별과 편견은 여전하다. 아직도 마녀와 악당들은 매부리코로 그려지고 있으며 외모 차별 때문에 성형외과 수술대 위에 눕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잊지 말자, 지금은 금발의 푸른 눈동자를 가진 여인이 미녀로 여겨지지만, 중세시대 갈색 머리와 갈색 눈동자가 대부분인 다른 지역에서 그런 외모는 마녀로 몰려 차별받았다는 것을. 이렇게 아름다움과 추함, 선함과 악함은 그 시대 그 지역의 권력을 쥔 자들이 정하는 것. 우리까지 그들을 따라 편견을 가질 필요는 없다.

박신영 『백마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 저자, 역사에세이 작가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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