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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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여러잡지에 발표된 이달의 시를 읽으며 우리시인들이 싸워야할 것은 바로시인들 자기자신임을 깨닫는다. 그것은 이달에 읽은대부분의 시가 자기 삶의 기록이거나 그러한 기록이고자 고민하는데 놓여있지않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자신과는 겉도는 관념이나 어떤 선입감에 더 많이 시와 시인들이 사로잡혀있다.
관습적으로 시를 슬픔이나 형이상의 근엄한 초월적인 세계를 파고들어야하는 것으로 아직도 믿고있거나 또는 자기 삶의 기록이라 할지라드 삶의 구체성을 통한 점신의 열음이나 확대보다는 심정적인것으로 윤색되어 나타나고있다. 우리시처럼 정서를 큰힘으로 내세우는 경우도드물 것이다.
이달에는 50년대로 일컬어지는 몇시인들의 정신의자리를 살펴보기로 하자. 『무의미 시론』으로 누구보다도 자기생의 논리(시론)를 집요하게 만들어온 김춘수의 『골동세』(한국문학)은 아직도 그가 김춘수적임을 잘 드러내준다.
이작품도 시에 침묵을집어넣으며 언어들을 단정하게 봉제하고 있다. 이경우의 침묵이란 시속의 언어로하여금 의미기능을 포기하도록 한다기보다는 어떤관념이나 생각을 드러내지 못하게하는 일을 말한다. 시로써 무엇을 발언하려는 다른많은 시인들에 비추어 이해하면 될것이다. 『처용단장』이후 이같은 태도는 그의 지속적인 태도이고 이제는 김춘수 시의 상표처럼 굳어진 것이다. 나로서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김춘수의 시는 그의 산문적논리를대할 때만큼 감동적이지 못하다. 이번의『골동세』는 작품으로서 아주 단순한 편이다.
대낮에 어쩌다 눈에띈 서북쪽의 작디작은 별(그에게 서쪽은 얼마나 빈번하게 시속에 등장하는 방위인가)을 발견하고 그 별에대한 시의 화자의 설명이곁들인다. 그리고 문경새재지방에 갔다 만난 미나리·냉이풀에 대한 나이를 생각하는 것이 이 작품의 내용이다.
과장적인 설명을 추가하자면 상상력을 통해서별에서 환기된 공간감각과 미나리풀에서 끌어낸 시간감각을 대비시키고 거기서얻는 정서적인 분위기가 이시의 큰 골격일 것이다. 이 정서적인 분위기에 독자가 반옹하는 정서내용 그것이 큰 의미의 시적의미일 것이다. 그것뿐이다. 아마 시는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시속에 침묵을 집어넣는경우와는 대척적인 자리에 박재삼의 『무심코 보니』 (한국문학)가 놓일 것이다.
박재삼만큼 독자들의 의견이 일치되는 시인도 드물것이다.
그것은 20여년동안 한을 기조로 「눈물」과 「저승」이란 소도구를 언제나 시에 동원하고 있기때문이다.
변화가 있다면 시집 『어린것들 옆에서』이후로 그의 가즉들이 시의 전면에 종종 등장하는 점이다.
그래서 가족을 통한 삶에 대한 깨달음·체념, 그리고 그 배경의 한스러움이 박재삼시의 정서처럼 되어있다.
『무심코 보니』도 가족들이 등장하고 그 가족들의죽음을 맞는 시간적 거리관계와 그것을 뛰어넘어 펼쳐진 이승살이의 제대로의 모습을 보는 것이 그 내용이다. 박재삼의 시는 언제나 해설과 주석을 필요로 하지 않을만큼 직설적이고 일정한 틀에 매어있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곧 정해진 틀에 따른 무난함이 정신의 확대를 막고 설움 눈물로 생을 협소하게 가두는 것이다. 시가 정신의 새로운 높이를꿈꾸는 것이라면 우리시는 무난한 시와 시인이 많을수록 비극인 것이다.
이상의 두시인과 비슷한나이에 든 전봉건은 이두시인과는 정신의 자리에 차이를 보여준다. 이 차이는 평가보다는 빛깔에 있어서 그렇다. 『마술』 (월간문학)은 시의 학자가 무대에서 관중들에게 진행되는 마술을 단순히 설명하는 예술이다. 「알레고리」라고 할 이작품의 의미나 의도를 굳이 밝히자면 이 시대에 궁핍하고 어려운 삶을 「마술」로 이해하고 설명하려는 것이라고 할수 있다.
그러나 이 시는 시와 비시의 경계를 생각케하고 그만큼 긴장이 풀려있다. 그것은 전봉건이 감각을 그의 주무기로 보여왔고 그감각이 드러나지 않는 경우 자칫 평면성에 잘 놓이기 때문이다. 이들 세사람의 시인들은 한마디로하면 정신과 삶의 확대에 관계되기 보다는 나이에 따른 무난함 속에 정신의 자리를 지킨다는 점이다. 그것은 반드시 8월의 무더위 때문일까. 이달의 시를읽으며 우리 시인들의 싸움은 무더위를 넘어선 다른 어떤 것임을 거듭 확인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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