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는 화려해도 실속이 별로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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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난61넌 4월17일「피그스」만 사건이 터졌을때 당시 미국의 주「유엔」대사 「애들레이· 스티븐슨」은 「유엔」 안보리회의에 나가 미국의 무관을 공개 천명했다. 두번씩이나 대통령후보로 지명됐던 그는 바로 그 거짓말 때문에 영영정상을 차지할 수없게됐다.
「피그스」만 사건은「케네디」대통령의 승인아래 미국에서 훈련받은 「쿠바」망명자들이 「피델·카스트로」 정권을 전복키 위해 침공한 사건이었으나 「스티븐슨」대사는 백악관의 은폐지시를 곧이곧대로 따랐던 것이다.
그러나 15일 사임한 「앤드루·영」대사의 경우는 그 정반대다.
「영」은 처음부터 『고삐풀린 말』이었다.
취임 바로 다음날 그는 「쿠바」의 「앙골라」 개입사태를 두고 『「쿠바」가 「앙골라」에 안정과 질서를 가져왔다』고 말해 미국 안팎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재주 30개월간 미국의대외정책에 상반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아 백악관과 국무성을 당황케한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그때마다「카터」는 그를 감싸면서 그에 대한신임을 재확인해주곤 했다.
만약 「영」대사가 미국흑인들의 희망이 아니며 「아프리카」와 제3세계국가들의 지지를 받지못했더라면 목이 열개가 있어도 모자랐을 것이다.
일부에선「영」을 두고 미국의 「유엔」대사가 아니라 「카터」 대통령의 「아프리카」특사라고 빈정대기도 했고 외교관이라기보다는 정치가로 평가하기도 한다.
흑인대사라는 이유만으로도 미국과「아프리카」국가들과의 관계가 부드러워 질수있었다. 그를 지지하는 미국흑인들의 표는「카터」에게 큰힘이 됐다.
그러나 지난 7월26일「영」 대사가 PLO의「유엔」 「업저버」단 대표인 「제흐디· 라비브·테르지」를 만난 의교활동은 즉각「이스라엔」과 미국내유대인들의 거센 반발을샀다.
더구나 「쿠웨이트」가 「유엔」 안보리에 「팔례스타인」해방기구(PLO)가 「이스라엘」의 생존권을 인정하는 67년11월22일의 안보리결의안 제242호를 승인하는 조건으로 「팔레스타인」의 생존권을 보장하자는 수정안을 내놓자 사태는 더욱 악화됐다. 「이스라엘」 측은 「캠프·데이비드」 평화협정을 파기하겠다고 위협했고 미국의 경제계와 언론계를 장악하고 있는 미국유대인들은 「카터」의 재선올 위협했다.
오직 「카터」의 재선을 위해 뛰고 있는 참모장「해밀턴·조던」이 「영」대사의 행동에 대노했다는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결국 방자(?)하기 조차 했던 「영」대사는 유대인들의 조직적인 압력에 굴복했다.
「뉴욕」 시내 특급 「호텔」인 「월도프·아스토리아」의 대사관저에서 살며 연봉5만7천「달러」 (2천8백50만원)와 기타 활동비를 받고 있는 미국의 「유엔」대사는 화려하긴해도 실제로 권력은 없는 자리다.
지금까지 15명이 이 자리를 거쳐갔는데 그중7년을 재임한 「헨리·캐보트·로지」가 최장수였고 겨우 3개월도 못채운「조지·볼」이 최단명대사. 「포드」대통령시절 국무장관「키신저」와의 불화로 물러났던 「대니얼·모이니핸」은 「유엔」 대사직을 정계진출의 발판으로삼았다. 74년 초대 북경주재 연락사무소장에 임명된 「조지·부시」도 2년간「유엔」대사를 지냈다. 이 자리를 거쳐간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 자리가 『빚좋은 개샅구』라고 말한다.
외교관으로선 더할수없이 화려하고 권위도 있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무런 권력이나 영향력이없다는 것이다.
계속되는 자선요구로 때로는 집의 돈을 가져다보태 써야할 정도다.
정치적으로 야심만만하던「앤드루·영」조차도 때론 「아틀랜타」의 고향집을 그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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