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스스로 불러들인 「수마의 심술」|물새는 저수지·민둥산 방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수마가 할퀴고 간 현장-. 홍수에 밀려 자갈밭이 된 논에 주저앉아 실의에 빠졌던 농민들은 그 비극의 자리에 농토를 일구기 위해 다시 재기의 삽을 들었다. 이번 피해는 『천재가 아니라 피할 수 있었던 재난이었다는 것』이 농토와 집을 잃은 이재민의 한결같은 탄식이다.

<서천의 허술한 저수지>
충남 서천군 종천면 종천리-.
농경지 90%가 침수돼 올 농사를 망쳐버린 참담한 수해현장은 5일 상오7시40분 저수지 제방이 터지면서 흘러내린 물이 종천리 2구와 1구를 가로지르는 문수골을 휩쓸고 3km쯤 내려가다 장항국도를 연결하는 종천교(길이 30m·폭15m)를 붕괴시킨 뒤 종천간척지 3백여 정보를 뒤덮어 방조제 1백여m까지 유실시키는 등 위력을 발휘해 농토가 온통 자갈밭이 돼버렸다.
수마의 주범은 마을 위쪽 문수산(해발324m 계곡에 둑(길이3백20m·높이 13m)을 쌓아 만든 백운저수지(저수량 1천2백t).
『천재지병이라고만 할 수도 없어요. 둑이 터질 위험성이 많아 주민들이 늘 불안해 왔는 걸요.』
쑥대밭이 된 논에서 물꼬를 잡고 있던 김영석 씨(34)의 말이다.
주민들의 얘기를 종합하면 제방붕괴원인은 3가지.
저수지 오른 쪽에 개설된 골재채취전용도로(폭3m)가 제방보다 2m나 낮아 길 쪽으로 물이 흘러 패는 바람에 여수로(여수로=저수하고 남은 물을 흘려 보내는 곳) 「시멘트」 구조물이 수압을 견디지 못한 것이 주된 원인.
또 여수로 규모가 폭4m·길이2m로 작아 계곡에서 흐르는 유량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고 제방(밑바닥 너비 28m·윗 너비 5m) 축조과정에서 점토·황토·자갈 등을 마구잡이로 섞어 부실 공사를 한 것도 버금가는 원인이다.
이 때문에 지난해 3월 제방 왼쪽 밑 부분에 구멍이 뚫려 보수공사를 했으나 지난 5월 또 누수현상을 일으켜 다시 땜질했다.
충남 보령군 미산면 성주리 일대는 채탄 한 후 마구 버린 폐석이 성주천의 하상을 인근전답보다 1m이상 높은 천정천으로 만들어 인근 3개 골짜기에서 한꺼번에 쏟아진 엄청난 수량을 감당해내지 못해 일어났다.
대천읍의 경우 5년 전까지만 해도 대천시내를 앞뒤로 2개의 하천이 흘렀으나 주택지를 만들기 위해 하천 1개를 매립, 저지대에 무작정 배수시설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채 집이 들어섰기 때문이었다. 모든 사람이 제 할 일을 못해 일어난 참변이었다. <서천=김원태 기자>

<잦은 강원도의 산사태>
사망·실종 33명, 중상 16명, 이재민 4백25명, 재산피해 15억여 원을 낸 강원도 평창군의 수해는 『뭐 별일 있으랴』는 식의 수방 행정부재가 빚은 결과였다.
산사태에 대한 대비책이 전혀 없었고 주민들에게 대피경고조차 안 해 피해주민 모두가 집안에서 편히 잠자다 변을 당했고 심지어 하천 범람을 피한다고 높은 곳을 찾았다가 산사태를 만나 일가족 13명이 몰살했다.
평창군에 따르면 군내 대부분의 산들은 암반만으로 된 산은 없고 30도 이상의 경사에 겉 부분의 흙이 암반에 살짝 얹혀 있는 정도로 두께가 얇거나 두터운 층의 토사로만 이루어져있다.
또 평창군은 90%이상이 산으로 평지가 워낙 적기 때문에 모든 마을이 나무도 별로 없는 산기슭 하천 변에 자리잡고 있어 산사태로 인한 대형참사의 우려가 있었다.
그런데도 평창군은 『여지껏 하천범람으로 인한 수해는 있었지만 산사태는 없었다』는 이유로 집중호우로 인한 산사태의 가능성을 도외시했었다.
산사태 예상지역에 대한 파악마저 안 되어있는 상태.
1개 읍·6개 면으로 구성된 평창군은 5일의 집중호우로 평창읍 미탄면·방림면·대화명 3등 4곳에서만 1백여 건의 크고 작은 산사태가 일어났다.
평창군의 경우 경사45도 이상의 산들 중 나무가 없는 곳은 거의, 모두 산사태가 난 셈이다. 이 때문에 산사태로만 23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외에 건물2백42 동이 전파 또는 반파 됐고 농경지 2백83·51ha가 유실 또는 매몰됐으며 농작물피해가 1천8백34t, 교량39개소, 제방30개소가 유실됐다. 또 이 지역의 통신·전기 등도 모두 불통됐다.
일가친족 13명의 목숨을 앗아간 평창읍 입탄리 백덕산 산사태의 경우 사태가 난 지점은 74년까지 만해도 주민들이 화전을 일구던 곳이다. 75년 군당국이 화전을 금지하고 이곳에 나무를 심었으나 나무가 채 자라지도 못한 상태에서 집중호우를 만나 1백여t의 도사가 아래로 쏟아졌다.
이밖에 강원도의 수해는 탄광에서 하천변에 마구 버린 폐석 때문에 하상이 높아지고 물길을 막아 물난리를 불러 피해가 가중된 것이 문제로 드러났다.
정선군 사북읍 사북∼고한, 사북∼증산역간 두 곳의 철길 35m가 유실, 태백선이 한때 불통된 사고의 경우 인근 탄광 폐석장에서 쏟아진 폐석 더미가 하천 물길을 막는 통에 급류가 철길을 덮쳐 일어났다.
이는 탄광 측이 광산보안법상 엄연히 금지돼 있으나 폐석장에 축대 등 시설을 허술히 한채 폐석처리를 마구한데다 당국도 이를 방치했기 때문에 빚어졌다. <평창 이석구·김현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