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개로 늘어났다 … 싱글맘들의 희망가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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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서경배 회장

“할머니는 여성들이 머리에 바르는 동백기름을 짜서 팔았어요. 글을 읽고 쓸 줄은 몰랐지만 최고의 재료로 좋은 물건을 만들어야 한다는 장사의 기본은 정확히 아셨죠.”

 2일 오후 경기도 용인시의 아모레퍼시픽 인재원에서는 국내 시장 점유율 1위 뷰티회사인 아모레퍼시픽의 서경배(51) 회장이 회사의 모태가 된 1900년대 초반을 되짚고 있었다. 미래의 아모레퍼시픽을 꿈꾸는 여성 창업자들을 앞에 두고서다. 서 회장의 할머니인 고(故) 윤독정 여사는 서 회장이 태어나기 전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경영관에 누구보다 큰 영향을 미친 여성이다. 서 회장이 특별한 날마다 ‘할머니의 동백기름’ 얘기를 꺼내는 이유다. 

 희망가게의 시작도 할머니에 대한 존경과 궤를 같이 한다. 저소득 한부모 가정의 여성가장 창업을 지원하는 희망가게는 창업자금 지원 뿐만 아니라 회계·법무·세무상 어려움도 함께 해결해준다. 덕분에 여성가장들은 2003년 기금조성 후 10년간 210개의 가게 문을 열었다. 이들의 월평균 소득은 253만원으로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일반 한부모 가정의 월평균 소득(172만원)보다 높다.

 이날 희망가게 10주년 기념행사에는 음식점·미용실·개인택시·매점·세차장·천연비누제조·봉제공장 등 다양한 분야의 희망가게 여사장님들이 모였다. 서 회장은 이들에게 애정어린 조언을 쏟아냈다. ‘미용실 개업 2년차인데 슬럼프가 왔다’는 얘기를 듣고 “개인적으로는 상황이 어렵고 답답하면 일단 눈을 감고 긴 호흡을 여러번 한다”고 답했다. 그는 “그러면 어디선가 에너지가 나오더라”며 “그제야 ‘이번 기회에 내가 무엇을 바꿀까’ 고민하고 위기를 반전시킬 기회로 삼는다”고 말했다. 커트·염색·파마는 안하고 번화가에서 헤어 드라이만 해주는 소규모 사업장의 사례를 소개하기도 했다. 평소 여성창업에 관심을 갖고 공부해 온 그의 내공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서 회장은 출근길이나, 사업상 미팅을 앞두고, 또는 저녁 약속이 있는 이들을 대상으로 드라이만 해줘 성공한 사례를 설명하며 “모든 회사는 고객이 누구인가, 우리 고객이 무얼 원하는가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육관도 솔직하게 털어놨다. ‘아이가 사춘기로 접어들어 말을 안 듣는다’는 고민에는 “엄마가 위축돼 있으면 애들이 말을 안듣는다. 엄마가 확신에 차서 일하면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엄마의 자신감을 존경하고 따르게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서 회장이 창업주인 부친 서성환 회장을 존경하고 따른 것은 자신이 한 말을 몸으로 실천했기 때문이라는 말도 더했다. 그는 “아버님은 늘 겸손하라, 절대로 거짓말하지 말아라, 무슨일을 하든 목숨을 걸고 하라고 강조했고 그렇게 살아온 분”이라며 “국밥을 끓여도 충실하게, 떡을 하나 만들어도 남다르게, 화장품을 만들 때도 최고만 내놓으려고 노력하는 원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딸이 시집이나 잘 갔으면 좋겠다’는 얘기나 ‘자녀가 취업을 못하고 있다’는 걱정에도 세심한 조언을 했다. “시집보다 중요한 것은 딸의 자립이니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주라. 직장과 직업은 다르다. 직업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고 직장은 회사다. 본인이 원하는 업을 찾기위해 필요한 것을 어머님이 함께 고민해 주시라.”

 서 회장은 이날 행사를 마치며 “무엇보다 위기에 처했을 때 일수록 남 탓을 하지 않는 게 어려움을 벗어나는 가장 빠른 길”이라며 “힘들 땐 거울을 보며 내가 뭘 고치면 좋을까 생각하고, 잘 될 때는 유리창 밖을 바라보며 누가 나를 도와준 건가 생각해 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용인=채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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