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통화·임금의 억제…일본의 교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나의 한국방문은 이번이 네 번째다. 지금까지 1년걸러 온 격이지만 올때마다 한국경제발전이 눈부신 점에 놀란다.
70년대초에 처음 왔을때는 복장도 주택도 허술한 것이 눈에 띄었다. 지금은 전혀 다르다.
가장 변화한 것은 일반사람들의 얼굴 모습이다.
당시는 아직 어려운 가난을 참고 견뎌온 흔적이 남아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현재는 자신이 붙어 여유가 있고 웃는 얼굴이 많아졌다. 이것은 경제가 발전하고 생활이 좋아졌다는 좋은 증거다.

<긴축-불황에 대해 걱정하는 견해 늘어>
통게를 보면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제1차 석유위기후인 지난 74년과 75년에는 조금 무뎌졌지만 76년 14%, 77년 11%, 78년 13%로 대단히 계속 높은 율을 나타냈다. 한국의 경제가 세계에 예를 볼 수 없는 성과를 올린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경제학자중에는 안정주의자와 성장주의자가 있다. 안정주의자는 언제나 경제의 고삐를 잡아당겨 모험을 하지 않고 주의깊게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성장주의자는 기업의 설비투자를 자극하거나 기술진보를 촉진하는것같은 적극적 정책을 써서 높은 성장으로 국민의 생활을 윤택하게 해야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정부에 있을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성장주의를 주장해왔다. 지난 1964년 나는 경제기획청에 있으면서 경제백서 집필의 책임자로 있었는데 그때 백서의 결론은『성장을 통해서 복지의 증대를 달성하자』고 하는 것이었다.
일본경제 발전의 발자취를 뒤돌아보면 나는 당시의 생각이 올바른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또 한국경제의 발전도 성장주의의 타당성을 증명하는 것으로 성장주의자인 나는 퍽 기쁘게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조금 걱정되는 점이 생겼다. 그것은 한국경제는 성장이 지나쳐 물가 등귀가 맹렬하고 이것을 억제하기 위해서 정부가 강력한 긴축정책을 택한 결과 재고의 누적, 실업의 증가가 일어나고 심한 불황에 휩싸일 것 같다고 보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통계를 보면 분명히 79년 상반기는 도매물가가 연율로 22%, 소비자 물가는 28%나 높아져 있다. 성장률은 절대수준으로는 높지만 78년하반기부터 신장율은 떨어져 79년은 한층 둔화가 예상되고 있다. 더욱이 거기다가 OPEC의 석유가격 대폭 인상이라는 중압이 가해져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는 어떤 정책을 택하면 좋을까.
불황을 타파하기위해서 긴축정책을 전환하고 금융을 완화해야 할것인가. 물가안정을 제일로하여 긴축정책을 계속 추진해야 할까.
정책당국은 너무도 어려운 판단에 직면하게 될것같다. 또「이코너미스트」의 의견도 엇갈려 있을 것 같다.
어떤 정책이 타당할것인가에 관해서는 외국인이 경솔하게 의견을 밝히기가 어렵다.
나는 한국경제를 깊이 연구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에 더욱이 어떤 정책이 좋을지는 얼 수 없다. 각국에는 밖에서 보면 알 수 없는 특수성이 있는것이다. 오로지 통계를 토대로 오늘의 한국경제를 보면 석유「쇼크」후의 일본경제에 많이 유사한 점도 있다.
그래서 참고로 일본의 예를 소개코자한다. 석유「쇼크」전후의 일본과 현재의 한국이 어느 점에서 유사하냐하면 우선 물가상승률이다. 지난 73년도에는 일본에서는 도매물가가 23%, 소비자 물가는 16%나 올라갔다. 74년도에는 도매물가는 23%의 상승을 계속했고 소비자물가의 상승률은 22%로 한층 높아졌다.

<통화30%·물가23%·임금33% 상승경험>
일본에서는 그때까지 물가는 비교적 안정되어 있었으나 73년도부터 20%를 넘는「인플레」가 돌연 일어난 것이다. 왜 이런「인플레」가 발생한 것일까.
그것은 통화증발의 지나침, 임금의 과대상승, 수입물가의 급등이 겹친 때문이었다.
71년도의 여름께부터 통화(현금+당좌예금+정기성예금)의 증가율이 높아서 전년비 30%에 가깝게 상승했다.
임금상승률도 가속화해서 74년 봄에는 전년비 33%나 올랐다. 수입물가도 73년초쯤부터 목재·비철금속·석유등을 중심으로 대폭 올랐다.
지금 이같은 증가율을 최근 한국의 숫자와 비교해 보면 퍽 유사하여 놀랍다 (한국의 78년 총통화 증가율은 35%, 임금상승율은 24%).
그래서 일본에서는 이러한 상황이 생기면 물가상승이 임금인상을 유발하고 임금인상이 물가등귀를 크게 부채질한다는 임금·물가의 악순환이 발생했다.
74년초쯤은 이 악순환을 멈추게 하는 것은 거의 절망적으로 보였다.
그러나 이 악순환이 76년께부터 기적적으로 진정되기 시작했다. 78년 가을에는 도매물가는 전년비 4%나 하회하고 소비자 물가의 상승률도 전년비 3%에 머물렀다.
왜 이런 결과가 일어났는가. 그것은 첫째 일본은행이 불황을 각오하면서 과단성있게 통화의 발행을 억제한 때문이다.

<2년만에 통화·물가·수입물가 안정회복>
통화증가율도 75년에는 10%이하가 됐다.
둘째, 노동조합의 임금인상자제다. 노조는 임금을 대폭 올려도 이것이 소비자물가 상승을 초래, 생활을 어렵게 할뿐이라는 점에 유의하여 임금인상요구를 신중하도록 됐다.
지난 78년 봄 임금인상은 6%였다.
셋째는 외환「레이트」의 상승이다. 76년께부터 수출이 늘어나 국제수지가 흑자로 된 결과「엔(圓)」「레이트」는 한때 1「달러」= 3백「엔」에서 78년10월에는 1백76「엔」까지 상승했다. 이것이 수입물가 인하에 공헌했다. 이렇게까지 한때 걷잡을수도 없다고 생각된「인플레」가 진정된 것이다.
그래서 물가가 안정되니 정부가 경기자극정책을 취하는 것도 가능케되어 기업의 투자의욕도 부활하고 78년여름쯤부터 경기는 상승으로 반전했다.
통화증발의 억제, 노동조합의 협력, 기업의 수출의욕등이 잘 조화되어「인플레」의 위기를 극복, 성장을 회복하는 것이 가능했던 것이다.
지난날 일보의 경제정책에 관해서도 여러 가지 비판해야 할 점이 많았지만「스태그플레이션」극복이라는 점에서는 일본에 있어서는『뻗으려면 먼저 굽혀라』는 격언을 실행한 것이 성공의 열쇠였다고 생각된다. 성장주의라 해도 너무 지나치게 외곬으로 나가면 좋지않은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