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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째 "용의자추적"만|골동품상 부부·운전사 실종수사 공전|생사도 모른 채 미궁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이제는 뒤쫓을 용의자조차 없다』-. 19일로 골동품상 금당주인 정해석씨 부부 등 3명의 실종사건이 발생한지 한 달째. 수사관들은 새로 떠오른 기관원을 사칭한 30대 청년에게 한 가닥 기대를 걸고 있을 뿐이다.
사건이 터진 이후 경찰은 하루 1백30여명의 전담수사관을 동원, 광범위한 수사를 벌였으나 한 달만에 밝혀낸 것은 기관원을 사칭한 청년의「몽타주」사진 l장·범인의 윤곽은 물론 범행 동기·목적·실종자의 생사여부조차 확인하지 못하고있다.
경찰은 당초 이 사건이 쉽게 해결되리라 자신했었다.
성인 3명이 대낮에 유인됐으며 골동품상들은「진품」에의 유혹으로 항상 유인될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보아 1백% 면식범으로 단정했다. 이러한 추리에서 수사는 골동품 중간상인·도굴꾼·사기전과자 등을 찾기에만 바빴다.
그러나 유력한 용의자로 쫓았던 피해자주변의 엄 모 백모·안 모·채 모씨 등 무려 1백66명의「알리바이」가 성립됐고 이사이 사건에 관계된 많은 기억들이 사라졌다. 실종된 정씨가 사건발생 4∼5일전 기관원으로 사칭한 사람과 만난 사실을 밝혀낸 것은 25일이 지난 뒤였고 그때서야 수사방향을 바꾼 것은 경찰의 초동수사가 소홀했음을 반영하고 있다.
다음으로 수사에 임하는 경찰의 자세문제. 사건해결을 위한 경찰끼리의 정보교환 등 공조가 재대로 이뤄지지 않은 점이다.
초동수사 때부터 서울시경과 수사본부가 있는 종로경찰서사이의 마찰은 강력 사건이 터질 때면 으레 지적되는 것처럼 수사협조가 안 되는 것은 여전했다.
서울시경이 사건 발생 초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던 백 모씨의 주소를 종로경찰서에 가르쳐 주면서 수원시 세류2동을 매향동으로, 또 엉터리 번지로 알려줘 허탕을 치게 한 것을 두고 두 기관사이에 『단순한 실수였다』『고의적이었다』는 실랑이가 오갔다. 그후 시경「팀」은 백씨를 검거하고도 종로경찰서의 수사본부에는 알리지 않았다.
또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고질적으로 지적돼온 수사장비상의 문제와 과학수사의 한계 등이 이번 사건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무더위 속에서 수십 명에 달하는 수사대상 인물들을 맨발로 찾아다녀야 하고 경기도 일원에 걸친 수색작업에서 꼬챙이로 땅을 찔러보는 등의 뒤진 수사방법만이 거듭됐다.
강력 사건 때마다 한번씩 치르는 이른바 빗자루 쓸기 식의 수사도 도움이 되지 못했다.
면식범일 것이라는 경찰의 추리 때문에 피해자 주변의 골동품관계자 1백여 명, 고교동창생·친지 등 70여명이 경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았고 금당가게 종업원 주 모양(22)은 경찰조사를 받다가 실신하기까지 했다.
사건당일 피해자 정씨가「최 사장」이라며 전화를 받았다고 해서 정씨 주변의「최」또는 발음이 비슷한「채」씨 성을 가진 25명이 조사를 받았다.
이사건과 관련, 경찰조사를 받은 1백66명의 용의자 중 21명은 다른 범죄사실이 밝혀져 구속되기는 했지만 큰 사건 때마다 우범자 또는 전과자라는 이유만으로 경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고 있다. 경찰은 정씨 부부 등의 생존가능성이 희박한 것으로 보고있을 뿐 수사에 손을 든 상태.
한편 정씨의「금당」가게와 수사본부 등엔『정씨 일행이 어디쯤 살아있다』『범인들은 몇 살쯤에 몇 명 일 것』이라는 등 점쟁이들의 전화가 심심치 않게 걸려오고 있다.
『경찰은 명예를 걸고 금당사건을 해결해야 한다』고 시민들은 말하고 있다.<이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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