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태|전시용 「바캉스」와 「사재기」는 자신의 양심부터 좀먹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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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작년인가, 한문으로 성명 삼자도 못쓰는 어느 여환자가 『역전 내 옷가게로 손님을 끌어들일 때는 욕도 많이 먹었는데 요새 차를 사고 운전기사를 두었더니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사모님하며 굽실냅디다. 세상 별것 아니더군요. 단돈 60만원짜리 중고차지만 요새는 동네가게에도 타곤 갑니다』던 말이 생생하다. 돈은 없으면서도 너도 나도 「바캉스」요, 고급가구에 외제장신구, 「컨트리·클럽」회원이라는 식의 전시효과에 사회가 흔들리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기름값이 이처럼 오르고 나서는 빚을 내서라드 물건을 사서 쌓아두는 것이 남보기 떳떳하다는 생각이 만연되고 있다.
한편 신문을 보면 한면에는 「바캉스」안내기사와 남녀수영복 광고가 나는가 하면 한장 넘기면 『해도 너무한다』는 식의 「바캉스」족 규탄기사나 「고십」이 실린다. 물론 신문이 지사적이어야 하느냐 또는 보도중심적이어야 하느냐에 대한 논란은 많겠지만 이에 대한 판단력이 없는 선량한 독자들은 고민할지 모른다-. 『자, 바닷가로 떠나라는 것인가 말라는 것인가』. 바로 이것을 정신과학에서는「이중의미」라 한다. 정반대의 두 뜻을 동시에 주는 것을 말한다. 이런 식으로 가령 교육을 받은 어린이는 부모의 진의가 무엇인지를 혼동하여 장차 불량배나 정신분열증환자로 발전할 소지가 있다고 보겠다.
그러나 자기전시가 무조건 천박하고 역겹다 볼수는 없다. 화수회·동창회·친목회·「서클」등을 통해 서로가 단합하였다는 전시효과를 주고 받으면서 평소 약자라도 이에 힘과 자신을 얻음을 더러 본다.
특히 우리는 오랜 세월 자기를 낮추고 숨기면서 못난체 하고 지내야 미덕으로 치는 사회규범 속에 살아왔기 때문에 자기선전을 안하면 남에게 밟히는 현대사회의 비타에 적응이 덜 되어 대외적으로 손해볼 때가 많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자기를 전시하는 훈련도 받고 그런 습성도 키웠으면 한다. 10여년전 미국병원에서 겪은 일인데 집담회때 강사가 아는 사람은 손들라며 던지는 질문이 너무 쉬운 것들이어서 『유치하게 손들기는 뭐…』라는 속셈으로 팔짱을 끼고 앉은 나는 아기 아버지인, 미국인「인턴」들이 콧수염값도 못하고 기를 쓰고 매번 손드는 것을「불쌍하게」보았다. 몇주뒤 소문을 들으니 아니 이건 내가 바보로 평가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정부가 우리도「미사일」을 만들고 「우라늄」을 뽑아니고 GNP가 천불을 넘었다느니 하는 것을 국민에게 선전하는 것은 잘하는 처사로 이는 안보를 뛰어넘어 민족·인종이라는 차원에서 어딘지 모르게 위축감을 덜어주는 심리효과가 크다 하겠다.
그리고 역세적일지 모르나 때에따라 남들이「바캉스」를 간다면 자기 역시 전시효과에 놀아나는 셈치고 따라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뒤에 다녀온 친구들축에 끼지못해 패배감·분노 때문에 아내나 자녀가 몸져 누워버리니 여기드는 돈이 휴가비 보다 더한 예를 나는 여러번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기전시는 필요하기도 하다.
세상에는 『그저 쓰기가 좋아서 또는 인류를 위해서 시·소설을 썼다』는사람들이 있지만 이것은 표면적인 것일테고 근저에는 자기전시욕이 있을 것이다.
한편 분에 넘친 자기전시의 결과 망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이때 제일 딱하게 여겨지는 사람이 지식인이 아닐까 한다.
영화 한두편에 「귀재감독」, 논문이라고 내세울 것이 없는 「학자」, 신변잡기만을 쓰는 「사색가」, 환자를 안보는 「명의」 등 너무 일찍 「매스컴」을 타거나 아니면 떠받드는 밑사람에게 제동을 걸지 않아 자승자박의 소영웅이 되니 그뒤로 계속 자기의 실상이 과장된 허상을 따르러하다 결국은 자포자기하는 수가 많다.
인간이 애써 전시효과를 노리는 심리의 근원은 4∼7세 때인 소위「남근기」라는 성격발달 단계에서 찾아볼 수 있다. 남자아이인 경우 서서 그대로 하늘로 뻗치는 소변을 보고 부러워하는 여자아이가 옆에 있다면 자기 남근이 대견하고 자랑스러울 것이며 자주 남에게 이를 과시하고 싶을 것이다.
이렇게 과시를 지나치게 한쪽과 반대로 전혀 못한 쪽의 양극단에 속하는 아이는 뒤에 무의식적으로 이 시기에 연연한 집착을 갖게 되며 성인이 됨에 따라 뻔뻔스럽게 자기를 과시하는 성격으로 된다.
여자 아이인 경우는 이 남근기에서 남자아이를 부러워하는 도가 지나치거나 또는 아버지를 이상적인 남자인양 따르는「에디푸스·콤플렉스」가 심했던 것이 정상이라면 해소되는 것이 성년에와서도 일부가 잔존하는 상태가 그렇다는 것이다. 병원에 와서 무조건 과장만을 찾는 환자의 상당수가 이런 성격의 사람들로서 평의사나 전공의를 난처하게 만든다.
이런 분을 위해 병원에 따라서 과원수에 따라 모두 장을 주니 제1∼제5과장이 있기도 하다.
결국 자기를 분에 넘치게 과시해도, 반대로 덜해드 그 모두가 현대사회를사는데는 정신건강상 불리하니 자기있는 그대로를 올바르고 당당하게 드러내는 것이 이상적일 것이다.
그러니 정신과의사는 평시라도 자기전시가 되면 될수록 그만큼 명의와는 거리가 멀어진다. 그러니 우리같은 의사에게는 사회계몽과 진료의 두가지 역할을 다 잘 할수 없는 고민이 있음을 만천하에 전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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