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성장 정부만 5% 고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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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들어 하루가 다르게 경기가 나빠지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청사진은 분명치 않아 위기 상황에 정부가 기민하게 대처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국은행은 10일 올 1분기 경제성장률이 전년 동기 대비 3.9% 성장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지난해 4분기 성장률(6.8%)의 반토막 수준이다.

특히 직전 분기에 비해선 마이너스 0.4% 성장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전 분기 대비 마이너스 성장은 2000년 4분기 이후 2년여 만에 처음이다.

이에 따라 한은과 민간연구소들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대폭 낮춘 데 이어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이날 5.3%에서 4.2%로 수정했다.

반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한은이 3.4%에서 3.9%로, KDI는 3.3%에서 3.8%로 각각 올렸다.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이 동시에 진행되는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정부만 성장률 5%대 고수=한은과 KDI가 경제 전망치를 내림에 따라 경기 침체가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박승 한은 총재는 "경기는 바닥에 놓여 있다"며 "소비와 투자가 침체돼 있고, 물가 오름세가 커지고 국제수지도 넉달째 적자"라고 말했다.

조동철 KDI 거시경제팀장은 "경기가 예상보다 빠르게 하강하고 있다"며 "앞으로 더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는 지난해 말 마련한 5%대의 올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재경부 김영주 차관보는 "이라크 전쟁이 조기에 종결되고, 한.미 관계도 공고해지면서 대외 악재가 한풀 꺾이고 있다"며 "경제가 어렵기는 하지만 비관적인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진표 경제부총리는 "정부는 목표를 달성하는 데 주력해야 할 입장이고,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조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6월 말에 하반기 경제운용 계획을 짜면서 다시 살펴볼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문건 삼성경제연구소 전무는 "정부가 지금이라도 냉정하게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이를 토대로 정책목표를 분명히 하고 적극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경제가 과도하게 무너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병덕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시장 참여자와 정책 입안자의 시각차가 큰 것이 문제"라며 "정부가 실상을 제대로 알리고 고통 분담을 유도하는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적극적인 경기대책 필요=전문가들은 재정 대책부터 확실히 세울 것을 주문한다. KDI는 "2조~3조원 규모의 추경 예산이 필요하다"고 밝혔고, 강봉균 민주당 의원은 "10조원 규모의 추경을 편성해 투자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금리 인하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나성린 한양대 교수는 "북한 핵문제가 여전하고, 재벌개혁 불안감이 있기 때문에 금리를 인하한다고 기업들이 투자에 나서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KDI는 "콜금리를 내려 금융시장 경색을 해소하고 경기 하강에 대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장세진 인하대 교수는 "재정정책을 우선 쓰되 금리 인하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현곤.홍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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