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조롱해서 환호 얻기, 이게 과연 공감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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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상욱은 평소 개그맨 못지 않게 능청스런 표정과 포즈로 사진을 찍는다. 이날도 사진기자가 카메라를 들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알아서 자신의 끼를 발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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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의 어느 날 갑자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서 촌철살인(寸鐵殺人)의 위력을 제대로 보여주는 짧은 글, 아니 시가 급속도로 퍼지기 시작했다.

‘끝이 어딜까 너의 잠재력’(다 쓴 치약), ‘밝혀지는 진실 드러나는 거짓’(폼 클렌징), ‘내가 다른걸까 내가 속은걸까’(맛집), ‘서로가 눈치만’(닭다리), ‘지고는 못살아’(한일전)…. 평범함 속에 드러나는 기발함에 매혹된 사람들은 이 글을 열심히 퍼 날랐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게 모두 젊은 회사원 하상욱(33)의 전자책(e북)에서 나온 것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 그는 2013년 『서울 시』(중앙북스)라는 제목으로 오프라인 시집 두 권을 내 지금까지 무려 16만부나 팔았다. 2014년에도 상반기 시 부문 베스트셀러 1위다. 그 사이 그는 회사를 그만뒀고 하루에도 강연 요청을 수없이 받으며 정부 기관 홍보대사를 하는 유명인이 됐다. 갑자기 뜨는 인물에겐, 특히 SNS공간에서는 ‘안티’가 달라붙기 마련이지만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꾸준히 시를 공개하는 그에겐 별다른 안티가 없다. 말장난 같기도 하지만 내공 깊은 통찰력을 보여주는 시 때문이리라. 그의 쉬운 시는 쉽게 만들어진 걸까. 이런 궁금증을 갖고 그를 만났다.

공감은 보통 사람의 특권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포즈를 취해달라고 하자 셀카 사진 찍는 모습이라며 휴대폰을 꺼내 셀카를 찍기 시작했다. SNS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남에게 자신을 드러내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 때문에 사진을 찍는다고 설명했다. [사진 하상욱]

-성격이 궁금하다.

“그냥 말이 많은 아이였다. 친구들이랑 뛰어 놀면서도 쉴 새 없이 떠드는 그런 타입. 지금도 친한 사람들하곤 3~4시간 계속 수다 떤다.”

-‘시팔이’(※그는 스스로를 ‘시팔이’라고 부른다)니 어릴 때부터 책 많이 읽고 글 많이 썼을 것 같다.

“전혀. 초등학교 6학년 때 논설문 짓기 학교 대표로 뽑혀서 최우수상 딱 한 번 받아봤다. 그게 전부다. 중고등학교 땐 글쓰기에 아무 관심도 없었다. 만화책을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제대로 읽은 책이 한 권도 없다. 신문도 안 본다. TV는 많이 봤다. 뉴스·토론·만화 등 그냥 하루종일 틀어놓고 지냈다. 부모님은 맞벌이, 게다가 형제도 없으니 TV 그만 보라고 할 사람이 없었다. TV를 바보상자라고들 하는데 난 동의 안 한다. 어떻게 보면 책이 더 바보상자다. 모든 책이 다 좋은 건 아니지 않나.”

-그런데 어쩌다 시를 쓰게 됐나.

“2012년 7월 18일에 페이스북에 ‘사람은 절대 안 변해 그래서 사랑이 변해’라는 내용의 ‘개허세’란 시를 올렸다. 수십 명이 ‘좋아요’를 클릭하는 거다. 신 났다. 난 원래 누가 잘한다 잘한다, 하면 더 열심히 한다. 좀더 좀더, 하다가 스스로 글 만드는 데 재미가 붙었다.”

-잘하고 싶다고 아이디어가 막 나오는 게 아닌데.

“창작은 두 부류가 있는 것 같다. 자신에게서 끄집어내는 것, 아니면 남으로부터 끄집어내는 것. 난 후자다. 남들이 이걸 얼마나 받아들이고 얼마나 이해할 수 있느냐, 다시 말해 남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거다.”

-시를 금방 쓰나.

“아니다. 주제를 정하고 억지로 짜낸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몇 분 안에 쓰기도 하지만 한달 넘게 걸리기도 한다. 제일 오래 걸린 게 ‘지옥철’(착하게/살았는데//우리가/왜 이곳에)이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운율 생각해 띄어쓰기나 줄 바꿈도 고민 엄청한다. 조사 하나 단어 하나 그냥 나오는 게 없다.”

-시 공개 전에 반드시 지인 3~4명에게 물어본다던데.

“다른 사람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느냐 없느냐를 나 혼자 판단하는 건 자만이다. 아무리 내가 좋아도 주변에서 별로라고 하면 절대 공개하지 않는다. 서너 명도 공감을 못시키는데 나 혼자 좋다고 다른 사람 볼 시를 발표하는 건 욕심이다.”

앞에서 할 수 없는 말 SNS에 하지 마라

-글 쓸 때 원칙이 있나.

“공감은 좋지만 공격은 하지 말자. 한쪽을 조롱해서 다른 한쪽으로부터 격하게 공감을 얻는 것, 이게 과연 공감인가. 그래서 정치나 세대 간 갈등, 남녀 간 의견 차이 이야기는 안 하려고 한다.”

-그냥 욕 먹기 싫은 거 아닌가.

“맞다. 누군가 나에게 사명감을 요구할 때 굉장히 당황스럽다. ‘넌 이제 이만큼 유명해졌으니 이런 민감한 사항에 대해 의견을 말해’라는데 그럼 난 ‘내가 왜?’라고 답한다. 강하게 설득하려는 이야기들,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갈등을 더 크게 만드는 게 아닐까. 서로 이해하는 게 먼저지, 조롱하는 게 먼저일까. 난 세상을 바꾸고 싶은 게 아니다. 그저 하고 싶은 걸 하는 거다.”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으려면 집에 돈이 좀 있어야 하는데. 집이 부자였나.

“아니다. 내가 산 차가 우리 집 첫 차다. 어머니는 아직도 일하신다.”

이력서에 뭘 쓰지 … ? 이력 써

하상욱은 올 3월 부산지방경찰청 홍보대사로 위촉됐다. 위촉식 뒤 찍은 기념사진도 평범하지 않다. 처음엔 당황하던 이금형 부산경찰청장(왼쪽)도 웃고 말았다. 부산경찰청 직원들과 찍은 단체사진. (위부터) [사진 부산경찰청]

-강연 등으로 많이 바쁠 것 같은데.

“고정 출연은 EBS라디오의 ‘시 콘서트’ 딱 하나다. TV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제의가 많이 들어오는데 다 거절한다. 다들 내가 웃길 거라고 기대해서 싫다. 전에는 강연도 들어오는 대로 다 했다. 하루 두세 개씩 했다. 심지어 중고생들 숙제로 인터뷰 요청하는 것도 다 해줬다. 이젠 일주일에 1~2개 안 넘긴다. 똑같은 말을 계속 떠들다보니 강연이 직업인 사람같더라.”

-직장을 그만 뒀던데, 강연 많이 해서 돈 더 벌려고 했던 거 아닌가.

“전자책 앱 회사(리디북스)에서 일했는데 회사 일에 집중할 수 없어 관뒀다. 회사가 나보다 중요하지 않다. 회사에선 이해해줬는데 동료에게 미안했다. 말은 안 했지만 내 일을 대신 떠안기도 했을 거 아닌가. 내가 나가야 한다고 스스로 압박을 받았다. 인세랑 광고수익(코카콜라·BMW 등)이 있어 처음 관뒀을 땐 먹고 살만 했다. 하지만 마음 속으로는 이렇게는 오래 못 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당장 직장 생활을 하겠다는 생각은 아직 없다.”

-그 전에도 직장 두 곳을 금세 관뒀던데.

“처음엔 게임회사에서 디자이너로 1년 8개월, 그 다음엔 앱 만드는 회사에서 1년 3개월 일했다. 연봉이 마음에 안 들어서 나왔다. 화를 참고 일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조직생활은 잘 한다. 동료들하고도 잘 지내고.”

-‘안되면 될 걸하라’거나 ‘안되면 포기하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한 걸 본 적 있다.

“난 희망·꿈·힐링 이런 단어들, 싫어한다. 긍정으로 포장한 부정을 깨고 싶다. ‘포기하지 말라’는 말엔 억압이 깔려있다. 희망이란 단어엔 ‘자기 인생을 정말 낮은 확률의 도박을 걸라’는 말이 들어있다. 확률 높은 곳으로 눈을 돌리면 되는데 왜 모두가 낮은 확률인 줄 알면서도 성공한 일부만 잘사는 세상을 인정해야 하나.”

-그런 내용으로 강연하면 학부모들이 다 싫어하겠다.

“인생을 막 살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선택을 하라는 거다. 그러기 위해선 자신을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스스로를 모든 걸 다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뭘 잘하고 못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사실 포기라는 건 큰 용기가 필요하다. 난 포기를 부정적 단어로 보지 않는다. 우리가 어떤 일을 포기한다고 인생을 포기하는 건 아니지 않나. 포기란 다른 걸 시작하는 거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나.

“만화가 이현세는 꾸준히 노력하라는 조언을 담아 ‘천재와 싸워 이기는 방법’이란 글도 썼다. 그것도 맞다. 그런 멘탈(정신력)을 갖고 있다면. 나는 아니다. 난 이상하게 어릴 때부터 게임을 하다가도 나보다 잘 하는 친구가 나타나면 그 게임 쳐다도 안 봤다. 한때 만화가가 꿈이었는데 친구가 너무 잘하는 거다. 맨날 놀아도 나보다 항상 더 늘었다. 재능이라는 게 분명히 존재하고 난 내 재능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공부를 못해서 내가 잘 하는 걸로 대학에 갈 수 있을까 싶어 디자인을 전공했다. 막상 현업에 나와보니 미친듯이 실력이 뛰어나거나 굉장한 학벌이 중요하더라. 이 업계에서 최고가 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경쟁력이라는 게 단순히 실력은 아니더라.”

생각없는 말들이 생각하게 만들어

-다시 시 얘기를 좀 해 보자. 사람들은 하상욱 시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서 좋다고들 한다.

“시마다 제목이 있지만 내용이 꼭 그 제목에만 해당하는 건 아니다. 읽는 사람마다 해석을 달리 할 수 있게 열어두는 글을 쓰려고 노력한다. 예를 들어 ‘위에서 하는/ 일이라고 //무조건 참고/살기에는’ 이란 ‘층간소음’이란 시가 있다. 제목은 ‘층간소음’이지만 반드시 층간소음 얘기만은 아니다. 누구는 회사, 또 다른 누구는 선후배, 또 어떤 이는 정치가 생각났다고 한다.”

-시 제목이 대부분 굉장히 사소한 단어들이다.

“크고 무거운 제목을 정하면 딱 큰 이야기만 돼 버린다. ‘아닌데?/맞는데?’라는 ‘쌩얼’이란 시도 굉장히 사소하지 않나. 만약 여기에 사회적 갈등요소를 붙이면 그게 무거운 얘기가 돼버린다.”

-하상욱이 그랬던 것처럼, 많은 사람이 각자 SNS에 자기 글을 올린다. 그런데 대부분 공감을 못 얻고 허세 글이 된다. 차이는 뭐라고 생각하나.

“한 끗 차이다. 모두 아는 사실을 마치 가르치듯 말하는 게 허세 아닐까. 난 글을 쓸 때 ‘아시다시피’라는 식으로 접근한다.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다. 다른 이를 바보라고 생각하니까 내가 바보가 되는 게 아닐까.”

-남들은 시상 떠올리려 여행도 자주 다닌다는데, 어떤가.

“잘 안 다닌다. 집에 있는 게 제일 좋다. 지금도 약속 없으면 거의 노원구 하계동 집에 있다. 만나는 사람도 학창시절부터 친한 친구 몇명뿐이다. 난 만나는 사람, 선을 긋는다. 회사 생활 할 때도 회사에서는 친한데 퇴근하면 연락 안한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데 가깝게 지내지는 않했다. 그래서 오히려 관계가 더 좋은 것 같더라.”

『서울 시 2』 마지막에 이런 단문이 있다. 금방 읽을 순 있어도 금방 잊을 순 없기를. 이번 인터뷰 기사도 그렇게 다가갔으면.

글=심영주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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