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초상화가 없는 거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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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교황「요한·바오로」2세를 낳은「폴란드」는 국민의 90%가 「가톨릭」교도, 금의환향이라기보
다 정치·종교적 의의를 물씬 풍긴 그의 공산「폴란드」방문은 뒤에남긴 일진청풍과 여진을 감안
할 때 공산정권이 그를 받아들인데 대해 다시 한 번 놀라지않을 수 없을 것같다. 그러나 수개월
전 국제「매스·커뮤니케이션」연구학회학술회의 참석차 「바르샤바」에 체류했던 필자에게는
「기에레크」정권이 그의 방문을 좋든궂든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던 감이 잡힌다. 체류기간이
단7일. 그것도 입국목적외의 일에 눈을 돌리고 귀를 기울일 시간여유가 별로 없어 주마간산에도
미치지 못하나 보고, 듣고, 느낀대로 「폴란드」방문기를 옮겨본다.【필자】
무엇보다도 동구권, 아니 동구의 한 나라와 우리나라 사이엔 높은 장벽이 가로놓여 있다는 것
을 입국수속 첫관문에서 실감했다. 회의를 주관하는「폴란드」조직위원회의 초청장, 「폴란드」국
영여행사의 체재비수납필증과「호텔」예약통지서, 학회장의 공한등으로 단단히 「무장」하고「파
리」주재「폴란드」총영사관에 입국사증을 신청하자 담당영사는 제반문건의 검토도 없이, 첫마디
에 자기로서는「비자」를 발급할수 없으니 한 번 본국정부에 훈령을 요청해 보겠다고 냉랭하고도
어림도없는 짓이라는 표정을 풍기며 모든 문건을 돌려주었다.
첫날의 반응보다 더 큰 충격을 준것은 그 다음날의 회답이었다.
『본국정부로부터 발급불가』의 회신을 받았다고 전하면서『일찌기 잘오셨습니다. 「파리」가
물가비싼 곳이라 더 이상 체류할 필요없이 되돌아 갈수 있게됐으니 말입니다』하는 위로아닌 단
호한 투의「선언」이었다.
끈질긴 한국인의 기질로 맞설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영사관을 뛰쳐 나와 학회장인 영국인교수
(「레스터」대학「J.D.핼로런」)에게 호소하는 동시에 회의주관「폴란드」조직위원장에게 국제전
화로「비자」발급에 조력을 요청했다. 24시간이 지난후 학회장은 장거리 전화로 조직위와 외무성
사이에 타협이 이뤄졌다고 희보를 전하고는『「바르샤바」대학 동양학부 극동학과에서 선택과목
으로 한국어를 고수하는「폴란드」인「오가레크 최」여사(Czoj)는 좀 의외라는듯『어떻게된
「최」교수는 유창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틀림없이 또박또박 우리말로 말하다가『외국을 방문한
다는 것은 개인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외교관계와도 연관됩니다』하는 여운있는 말을 남겼다.
그녀와는 대조적으로, 「최」교수의 제자로 박사학위과정을 이수중인「로무알트·후츠차」
(Huszcza)씨는 학문연마를 위반 유학에는 사회제도와 국경이 문제냐고 제법 적극적인 자세였다.

<깜짝놀란 한국어 전정교수>
그는 일본어를 전공하고 한국어를 선택으로 택하여 우리말을 불편없이 구사하는 어학의 재사라
고 「최」여사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다소 긴장속에 입국수속을 마치고 공항에서「호텔」까지 달리는 사이 한가지 의외라고 느껴지
는 것이 있었다. 붉은 깃발, 당지도층의 초상화, 구호등이 하나도 눈에 띄지 않았으며 시내전역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프랑크푸르트」에서「바르샤바」까지 이용한 「폴란드」항공사소속 소련「일류신」기에서도
「폴란드」의 분할망국당시 제정「러시아」에 항전한 애국자「카지미에르츠·폴라스키」의 양각
흉상이 내벽에 걸려있어 의의로 생각했었다. 소제여객기가 대제정「러시아」 항전 애국자의 이름
을따서 명명됐기 때문이다.

<북괴의 선전술 은근히비판>
「기에레크」통일노동자당(공산당)제1서기의 정치성을 띤 명명을 피한 오묘한 정치와 국민의
염증을 줄이려는 전략을 이두가지에서 판독할 수 있었다. 미국의언론인「해리슨·솔즈버리」가
중공과 북한을 방문한 다음 저구한 견문기(To Peking and Beyond)에서『북한에서는 20∼30m 간
격을 두고 무슨 형태로든-친각으로나. 청각으로나, 촉각으로나-김일성의 이름이 아니면 그에 관한
무엇인가에 부딪치게 마련』이라고 묘사한 북한과는 너무도 대조적이었다.
그것분만이 아니다. 「바르샤바」체류 며칠후에 들은 얘기인데『북한은 선전비를 아끼지 않는
모양』이라고 하기에 왜 그러냐고 되물었더니『딴 나라들은 선전유인물이라야 고작 한두장짜리
「팸플리트」아니면 몇「페이지」안되는 소책자인데 북한은 다르더군요. 두툼한 몇백「페이지」
되는 서적을 선전물로 요노와 저명인사들에게 심심치않게 배포하는데 그것도 대부분 김일성의 찬
양과 김의 가계성가족화·혁명가족화의 내용이더군요. 하는 은근히 비판하는 투의 대답이었다. 붉
은 깃발이 꽃힌 건물은 있었다. 그것은 「바르샤바」시의 최대간선로라 할 「에로졸림스키에」
대로에 면한 공산당본부건물에 꽂힌 붉은당기뿐이었다. 당지도층의 초상화도, 철조망도,「바리케
이드」도, 중무장한 경비병도 눈에 띄지않는 중후한 건물이었다. 자가용차면 내정까지 자유로이
통과할수 있고 당직자들의 자동차 주차장이 대로변에 면해있어 일반인이 주차할때가 마땅하지
않으면 슬쩍 주차해도 묵인한다는 「택시」운전기사의 말이었다.
우리나라와 인구가 비슷한「폴란드」수도「바르샤바」는 그 인구가 전전과 대차없는 1백40만명
선으로 도·농인구구성비의 격변에도 불구하고 수도로의 인구유입은 잘 억제돼온것같았다.

<외인상대토산품점만 붐벼>
수도의 널찍한 대로변에는 중후한 건물들이 즐비하고 시중심에 자리잡은 높이 2백34m의 문
화·과학관은 광활한 광장을 끼고 주변에 위압감을 주는 대석조건물로 평탄한 수도어디서나 보이
는「랜드마크」구실을 하고 있다.
거리들이 널찍널찍한데 비해 교통량이나 통행인 수는 대체로 한산한편으로 흔히 서방국가의 대
도시에서 볼 수 있듯이 흥청·벅석대는 거리는 아니었다. 주요대중교통수단이 교통량이 많지 않
은 도시에서나 볼수 있는 지상전차라는 것만봐도 짐작이 갈 것이다.
주거이동의 자유가 보장돼 있다고는 하지만 이와같은 수도상이 역시 공산국가임을 일깨워주는
일면인가 싶었다.
주말의 퇴근시간후는 백화점들이 많은 거리가 제법 붐비지만「쇼핑」을 즐기기보다 그저 필요
한 물건을 사가는 단순한 구매행위로만 생각됐다. 시중의 백화점을 비롯하여 점포들에 진열된 물
건들도 화려한 맛이 없는 것은 물론 양도 풍성하지 않았다. 가장 흥청대는 곳은 관광객들이나 기
타용건으로 입국한 외국인들이 붐비는 시중의 토산품점들이었다. <김지운 성균관대학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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