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채봉 원작 동화 애니메이션 '오세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7면

정채봉(1946~2001)의 동화'오세암'이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져 25일 개봉된다. 올해 줄줄이 타석에 나서는 '코리아 애니메이션 구단'의 1번 타자다. 같은 날 개봉할 예정이던 '원더풀 데이즈'는 배급상의 이유 등으로 7월로 밀렸다.

'오세암'은 지난해 프랑스 안시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대상을 받은 '마리 이야기'이후 첫 작품이라는 점, 1985년 발표된 원작 동화가 10만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라는 점, 한국 애니메이션 부흥의 신호탄이 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에서 이미 많은 사람의 관심을 모아왔다.

*** 토속적인 색감 돋보여

같은 날 개봉되는 일본 작품 '모노노케 히메'(97)가 2백40억원을 들인 대작인 반면 이 작품의 제작비는 15억원. 외형으로 단순 비교하면 게임이 안될 듯싶다.

하지만 제작진이 추구한 것은 엄청난 스케일과 화려한 액션이 아니다. 그것은 원작에 배어 있는 다섯살 길손이의 때묻지 않은 동심이자 아름다운 우리 산하다. '하얀마음 백구'에서 토속적인 선과 정감있는 색채를 선보였던 성백엽 감독과 제작진은 이를 위해 3년이 넘게 머리를 맞댔다.

미리 엿본 애니메이션 '오세암'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설악의 하늘과 시냇물.단풍.설경이었다. 특히 표현하기 어렵다는 물의 흐름이 매우 자연스럽게 그려진 것이 돋보였다.

주인공은 앞 못보는 누이 감이와 단 둘이 사는 길손이다.

우연히 길에서 스님을 만나 절에서 살게 된 길손은 하루라도 말썽을 피우지 않는 날이 없다.

스님의 염주 줄을 자르고, 고무신을 나뭇가지에 걸어놓고, 목욕 중인 스님의 옷을 몰래 들고가 노루에게 입히기도 한다. 다섯살배기가 마음 가는대로 벌이는 거침없는 행동은 순수한 자연의 모습 그대로다.

그런 장난꾸러기에게도 절절한 소원이 있다. 한번만이라도 엄마의 얼굴을 보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엄마는 맨날 누나 꿈에만 나타나고 자신의 꿈엔 나오지 않는다.

*** 향수 아련한 주제가

그래서 "마음공부를 하면 안 보이는 것도 볼 수 있다"는 스님의 말을 듣고는 자기도 마음 공부를 해서 엄마를 만나야겠다고 마음먹는다.

눈이 오는 겨울, 누이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스님과 함께 산중 암자로 향하는 길손에게 스님은 말한다. "마음을 다해 간절히 원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단다."

인적이 없는 깊은 산속 암자에서 길손은 과연 엄마를 만날 수 있을까.

엄마를 떠올리며 길손과 누이 감이가 들려주는 동요 '섬집아기'와 '나뭇잎배'는 관객들을 어릴 적 추억의 한가운데로 데려간다. 그 속에서 만나는 '엄마'는 아련하고 애틋한 그리움이다.

관음보살이 현신하는 마지막 장면은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다. 마치 '프란다스의 개'에서 네로가 마침내 루벤스의 그림을 보고야마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장면에 대한 설명이 부족해 느닷없다는 인상을 주는 점은 안타깝다.

내러티브가 매끄럽지 못한 곳도 일부 보인다. 예를 들어 앞못보는 감이가 바늘에 손가락을 찔려 가면서 도토리를 꿰야 하는 당위성 같은 것이다. 동생이 망가뜨린 염주를 대신 만들어 드리려는 감이의 고운 마음씨가 더 잘 표현됐으면 하는 아쉬움이다.

그럼에도 어느새 '엄마'를 생각하고 있는 관객들의 마음을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는 윤도현과 이소은의 주제가는 작품의 마무리로 부족함이 없다.

정형모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