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월드컵] 2002년 히딩크 판박이 … 코스타리카 '핀토 매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5면

“난 아직도 배고프다(I’m still hungry).” 거스 히딩크(68) 감독이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이탈리아와 16강전을 앞두고 한 말이다.

 30일(한국시간) 승부차기 끝에 그리스를 누르고 브라질 월드컵 8강에 오른 코스타리카 감독도 비슷한 말을 했다. “이야기는 계속될 것이고, 우린 여전히 배고프다(Story goes on and we’re hungry for more).” 돌풍을 이끈 호르헤 루이스 핀토(62·사진) 감독은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

코스타리카는 헤시피 페르남부쿠 경기장에서 열린 그리스와의 16강전에서 연장까지 1-1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5-3으로 승리했다. 코스타리카는 후반 7분 브라이언 루이스(29·에인트호번)가 선제골을 넣었지만 후반 21분 오스카르 두아르테(25·브뤼헤)가 경고누적으로 퇴장당하며 끌려갔다.

후반 추가시간에 그리스의 수비수 파파스타토풀로스(26·도르트문트)에게 동점골을 내줬다. 그러나 끈끈한 수비로 그리스의 공세를 막았고 승부차기에서 웃었다.

 코스타리카가 월드컵 사상 처음으로 8강에 오르자 팬들은 눈물을 흘렸다.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기자회견에서 핀토 감독은 담담한 표정으로 한국 축구팬에게 익숙한 말을 남긴 뒤 자리를 떴다.

 핀토 감독의 인생도 히딩크 감독과 비슷하다. 오히려 더 드라마 같다. 히딩크는 스타는 아니었지만 프로 선수로 뛰기는 했다. 그러나 핀토는 아예 프로 경력이 없다. 그는 “축구에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슬펐다. 내 삶의 전부였기에 축구를 할 수 있는 다른 길을 찾았다”고 했다.

 콜롬비아 태생인 핀토 감독은 10대 때 일찌감치 축구 선수의 꿈을 포기했다. 재능이 부족함을 절감하고 다른 길을 찾아 나섰고 지도자의 길을 택했다. 운동생리학을 공부했고 대학 졸업할 무렵 새 꿈이 생겼다. ‘월드컵에 나가는 팀을 이끄는 것’ 이었다. 대학을 졸업한 뒤 콜롬비아 프로리그에서 14번이나 우승을 이끈 명장 가브리엘 오초아 우리베(85) 감독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의 꿈을 전했고, 열정을 인정받아 콜롬비아 명문 클럽 미요나리오스에서 피지컬 트레이너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국가대표팀을 맡을 만큼 능력을 인정받았지만 지도자 생활이 순탄치는 않았다. 2004년 코스타리카 대표팀 감독에 부임했지만 19경기 만에 경질됐다. 2007년에는 콜롬비아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지만 26경기 만에 물러나야 했다. “인생 전체를 걸고 월드컵에 나서기 위해 싸웠다”는 그에게는 충격이었다. 그러나 핀토 감독은 좌절하지 않았다. 2011년 다시 코스타리카에서 기회를 줬고 세 번의 실수는 없었다. 북중미 예선에서 코스타리카를 2위에 올리며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았다. 그는 히딩크 감독처럼 3-4-3 전형을 즐겨 쓰고 강한 압박과 조직력을 요구한다. 핀토 감독은 8강에서 네덜란드를 만난다. 브라질 월드컵이 끝난 뒤 히딩크가 지휘봉을 잡게 될 팀이다.

벨루오리존치=김민규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