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치 키운 삼성SDI, 전기차 배터리 정조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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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삼성이 전기차 배터리 등 차세대 자동차 시장을 스마트폰 이후 새로운 먹거리로 정조준했다. 그룹에서 배터리 사업을 맡고 있는 삼성SDI는 1일 이사회를 열고 제일모직과의 공식 합병을 발표한다. 연 매출 10조원, 자산규모 15조원의 거대 부품·소재업체가 탄생하는 것이다.

 이로써 통합 삼성SDI와 전기차 배터리 업계 최강자인 LG화학, 그리고 ‘전기차 업계의 애플’로 통하는 미국 테슬라와 손을 잡은 일본 파나소닉, 세회사간 시장 주도권을 잡기 위한 ‘샅바 싸움’도 한층 치열해질 전망이다. 삼성SDI가 제일모직을 합병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전기 자동차 배터리의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선 제일모직이 수십년간 축적해온 신소재 기술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제일모직은 배터리 수명 등을 향상시킬수 있는 2차전지 분리막 기술과 유기소재 기술에 강점을 가지고 있다.

 박상진 삼성SDI 사장도 지난 3월 제일모직과의 합병을 발표하며 “전기자동차가 제대로 되려면 앞으로 한 번 충전해서 지속되는 시간이 획기적으로 늘어나야 하고, 충전시간도 단축돼야 하는데 지금 쓰는 소재 갖고는 안된다. 새로운 소재를 발굴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현재 순수 전기차는 1회 완충을 해도 주행거리가 약 100여 ㎞에 불과해 대중화를 위해선 강력한 배터리를 확보하는 게 필수적인 과제였다. 이 때문에 삼성SDI는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올 1분기 기준)을 최근 2년새 약 2배 수준인 10%까지 끌어올렸다.

 현재 삼성SDI의 배터리 고객은 BMW와 미국 크라이슬러, 인도 마힌드라 정도로 전기차 배터리 분야 1위인 LG화학과 비교하면 고객층이 얇은 상태다. 하지만 올해 들어 삼성의 행보에는 가속도가 붙고 있다.

 올 3월에는 그동안 파나소닉이 생산한 배터리를 사용했던 폭스바겐과 중형세단·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대상으로 전기차 배터리 공급 계약을 맺었으며, 지난달에는 LG의 주요 고객사인 미국 포드와도 제휴를 맺었다. 특히 폭스바겐의 경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해 5월 마르틴 빈터콘 폭스바겐 회장을 직접 만나 배터리 사업 분야 협력을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에선 삼성의 이런 공세적 행보가 ‘전기차’를 매개로 완성차 사업에 다시 뛰어들기 위한 정지 작업이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한 외국계 자동차 업체 임원은 “테슬라 방식으로 연간 생산량 30만대 정도의 ‘소량 생산 체제’를 유지한다면 생산 라인 건설에 드는 천문학적인 비용 없이도 완성차 산업에 진입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음성인식 비서·최첨단 내비게이션 등을 갖추고, 모바일과의 연동성을 극대화한 전기차를 미국·중국 등 내수가 탄탄한 지역에 판매한다면 소량 생산으로도 충분히 수익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테슬라의 경우, 올해 4만대를 비롯해 2020년까지 연간 생산량 50만 대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는 올해 현대차의 연간 판매 목표(786만대)의 약 16% 수준이다.

 삼성의 행보를 예의주시하는 또다른 대기업은 LG다. LG는 전자·화학 등 주요 계열사를 필두로 전기차 배터리뿐만 아니라 스마트카 등 차세대 자동차 분야에 관심을 가져왔다. 특히 지난달 29일에는 글로벌 자동차·전자업체로 이뤄진 ‘오픈 오토모티브 얼라이언스(OAA)’ 합류를 발표하기도 했다. 현재 OAA에는 현대차뿐만 아니라 제너럴모터스(GM), 폭스바겐 등 글로벌 자동차 제조업체를 비롯해 구글과 파나소닉, 엔비디아 등 전자·IT업체 등이 활동 중에 있다. LG 관계자는 “2007년 이후 GM·르노·포드와 현대·기아차 등 10여개 대형 자동차 업체에 전기차용 2차전지를 공급하며 시장을 선점해 왔다”며 “전기차 배터리 기술력만큼은 우리가 독보적이며, 그룹 전체적으로 스마트 카 등 차세대 자동차로 사업군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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