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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여의 벽을 허문다|유럽 국민학교의 남녀 역할평등교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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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금「프랑스」는「파리」에 살고있는 화가 방혜자씨는 작년가을 그곳 국민학교에 들어간 7세된 딸 사빈이가 학교에서 만들어왔다는 벽걸이 거울을 내보이며 『우리집 화장 거울』이라고 자랑했다. 큰 손바닥넓이의 둥근거울에 가장자리로 은도금, 넓은 테를 두른것인데 여기에 사빈이의 그림솜씨가 찍혀있다.
『7세아이가 벌써 집안에서 유용하게 쓰여지는 자기작품을 할수있다는 것은 그들에게 큰기쁨과 보람이 되는 교육입니다.』방씨는 자세히 보면 어설프기 그지없는 이 딸의 작품을 그래서 온가족이 보물 다루듯 소중하게 애용한다고 말했다.
생활의변화 앞서가는 교육
「핀란드」「헬싱키」에 살고있는 한국외교관 정동규씨댁에도 8세 아들이 학교에서 만들어온 실뜨기 벽걸이를 거실한가운데 장식해놓고 있다.『학교에서 배우는 것들이 이렇게 생활에 쓰여지니까 더 흥미있게 공부하는것 같습니다.』이댁주부 박길자여사는 이 아들이 만들어온 나무 그릇을「샐러드」를 만들때마다 꼭 쓴다고했다.
『실용의 공부』-세계 선진국들이 대부분 쓰고있는「9년제 의무교육」은 지금 한결같이 이 실용학습에 그 바탕을 굳히고 있다. 국가가 공평하게 무상으로 베푸는 9년간의 학교공부만 끝마쳐도 사회에 나가 무엇이든 자연스럽게 할수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는 교육목표다.사회일원으로서의 기본자격을 국가가 의무적으로 마련해 주는 셈이다.
20여년간 국민교 교사로 지내온「핀란드」의「구닐라·발레」여사는『국민학교 교육이 점점 체육·공작·가사등에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면서 이경향을 설명한다. 시민교육에 목표를 두고있는 일본의 경우도 『옛날엔 음악시간이면 노래만 가르쳤는데 이제는 악기를 누구나 다룰수 있도록 한다』 (동경가계총국민교 음악교사 난파경방씨의 말) 는 것이다.
공작·미술·바느질공부는 모두 실생활에 쓰이는 작품, 체육과 음악·외국어도 스스로 활용하는 범위로-. 「과감한」배구는 생활의 변화를 때로는 한발 앞서 교육하고 있다. 그 좋은예가「스웨덴」의「남녀의 역할평등 교육」이다.
남자어린이들에게 인형놀이를 시켜주고 요리와 육아를 가르치는 대신 여자어린이들에겐 자동차장난감·기계만지기등을 가르쳐보자-벌써 60년대초부터 정부의 시책으로 발표된 이 교육실험은 바로 10년뒤 서구를 횝쏜 여성해방운동의 물결속에서 「가장 앞선 평등교육」으로 본보기가 됐었다.
『남자가 요리하는것이 뭐가 이상합니까? 학교에서 당연히 배워야지요.』 「스웨덴」「스톡홀롬」시「나스비델」학교 9학년생「미카엘·융그렌」군(16세)은 마침 요리시간, 앞치마를 두르고 밀가루반죽을 하다가 되묻는다.
이정도면 결혼준비 완료
『나는 집에서 접시닦기를 매일 했어요. 그런데 학교서 요리를 배운 뒤로는 꼭 집에가서 다시해보기 때문에 식구들이 아주 좋아합니다.』「융그렌」군은 아버지도 요리를 잘한다고 자랑이다.
『실제로 가정에서 아버지와 아이들이 골고루 요리하지 않을수 없는 생활이기 때문에 학교에서 가르치그 있읍니다.』요리선생님「에바·리사·악셀손」여사는 이 요리시간을「남녀평등」의 뜻보다는「실용교육」에 큰 의미가 있고 말했다. 엄마·아빠가 다 직장에 나가고 없는데 혼자 무엇을 만들어 먹을수 있어야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뿐만아니라 어른되면 요리할줄 알아야되는것 아닙니까?』옆에서「프라이·팬」을 휘두르던「잉게마르·리스폴리」군이 선생님을 거든다. 그들은 바느질도 학교에서 배운다.
「스웨덴」의 경우「요리」는 8학년 (한국의 중2년)부터 매주 2시간씩, 그리고 9학년부터는 역시 남녀똑같이「육아」를 배운다. 우유먹이고 기저귀를 갈아주는것 정도는『아무것도 아니다』고 남학생들은『결혼준비 완료!』라고 농담한다.
실습비용은 나라에서 보조
『보십시오. 세계 유명한 요리사와 「패션·디자이너」는 다 남자가 아닙니까?』『남자가 오히려 입맛에 민감해서 요리점수는 여학생보다 휠씬 좋아요.』요리교실에 4개씩 놓여있는 조리대에 각기 4명씩 짝을 지어 오늘의 요리, 야채「수프」와「치즈」달걀「파이」를 열심히 만들고있는 이학생들, 이제「남자가 할일」「여자가 할일」이 바로 없다고 서로 인정한다.
실용의 교육은 최근 각국에서 어린이들에게 외국어를 가르치는데까지 뻗치고 있다. 지난77년부터 교육혁신 5개년계획을 실천하고있는「핀란드」에서는 국민교1학년부터 제1외국어(영어와「스웨덴」어), 3학년부터는 제2외국어 (불어·독어·「스페인」어둥)를 가르치는 새교과과정을 채택했다.
『세계가 점점 좁아지기 때문에 외국어는 필수조건』이라고 각국의 국민교교사들마다 입을 모은다. 국민학교 바느질시간에 자기작업복을 해입는 수준과 마찬가지로 외국어도 스스로 쓸수 있어야 한다는 해석이다.
그러나 이 모든 실용교육의 효과는 무엇보다 완벽한 자료, 튼튼한 뒷받침에서 나오는것. 『국가전체가 가장 큰 사업을 밀지않는한 이루어질수 없다』고 『헬싱키」의 「튈레」국민교 「라우르마」교장은 말한다. 의무교육 어린이 한사람에게 들어가는 돈이 교사봉급의 두배가 될정도로 국가세금을 쏟아넣고 있다는 설명이다.
1주 2시간, 각종기구 완비
「스웨덴」의 국민교요리시간 한과목을 위해서 학생1인당 한학기에 1백「크로나」(한화약1만2천원)의 실습비, 20여명 한반 재료공급에만 3만1천「크로나」 (약3백68만9천원)를 국고에서 쏟아넣고 있다.
그리하여 1주일에 2시간씩 배우는 요리교실의 내부시설을 보면▲조리화덕4개▲「싱크」대4개▲찬장·음식저장선반 각4개▲대형냉장고2대▲소형냉장고4대▲교실 한쪽벽을 완전히 차지한 음식재료벽장(양념에서부터 쌀까지 모든 재료가 가득차있다)▲대형찬장1개(이속에는「냅킨」술잔까지 모든 그릇과 수저가 정돈돼 있다).
그리고 「싱크」대와 붙어있는 찬장속에는 각종 칼과 조리집기·밀가루방망이·가위·드마·병따개·쓰레받기·비까지 들어있다.
전체학생 2백명을 상대로 이와같은 시설의 요리실이 두개 붙어있는데 바로 이 두교실 사이로 부속실이 딸려있다.
이 부속실에는▲대형세탁기▲대형 빨래건조기▲다림질판과 다리미▲보조냉장고2대▲비상용 「싱크」대 2대가 갖추어져 있고 교실입구에는 각종 요리책과 가정관계 책이 가득 꽂힌 책꽂이가 놓여있다.
『이렇게 시설하고 가르칠수 있는것은 바로 개인의 지나친 경쟁을 피하는데서 나오는 국가의 힘이 아닐까요』방혜자씨의 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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