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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고등어야 어디 숨었니? 산란장 찾아 삼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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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25일 오전 제주항. 국립수산과학원 소속 연구선 ‘탐사 8호’가 북쪽으로 뱃머리를 돌려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날 출항 목적은 제주 근처에 사는 고등어떼가 어느 곳에 알을 낳는지 찾아보는 것이다. 제주산 고등어는 제주 동쪽에서 주로 잡히는데, 북쪽에서도 산란장이 확인되면 그곳을 보호·관리해 고등어 어획량을 늘린다는 게 수산과학원의 목표다.

 20분을 순항하던 배는 제주항에서 북쪽으로 5㎞ 떨어진 지점에서 속도를 줄였다. 배 엔진 소리가 잠잠해지더니 연구원들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첫 작업으로 기다랗고 하얀 플라스틱 통을 밧줄에 묶어 도르래에 연결해 바다 위로 던졌다. 이번 작업을 지휘한 이승종 수산과학원 자원생태실장은 “이 지점의 수온과 염분을 측정하는 장치”라고 설명했다. 이곳에서 알을 발견하면 고등어가 산란 장소로 선호하는 온도와 염분을 파악하기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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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분 후 측정기가 올라온 뒤 연구원들은 커다란 투망을 준비했다. 성인 남자 5명이 들어가고도 남을 크기다. 이 실장은 “이제 알을 찾아보기 위해 망을 던질 겁니다”고 했다. 망이 물속에 잠기자 초시계를 눌렀다. 다시 10분이 지났고 연구원들은 망을 들어 올렸다. 그런데 하얀 망 안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바닷물만 뚝뚝 떨어졌다. 이 실장은 기자의 반응을 예상한 듯 “원래 고등어 알은 작고 투명해 저 같은 연구원도 눈으로 봐선 전혀 몰라요”라고 말했다. 연구원들은 망 끝에 달린 은색 캔 모양의 채집기를 떼어 배 위에서 바로 보존처리 작업을 시작했다. 이곳에서 퍼 올린 바닷물을 나중에 연구실로 가져가 분석해야 이 물 안에 고등어 알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다는 게 과학원의 설명이다. 이 실장은 그래도 분위기가 어색했던지 어제 잡았다는 고등어 치어(稚魚)를 들고 나왔다. 날파리 정도 크기의 고등어 새끼들이 손바닥만 한 그릇 안에 있었다. 이 실장은 치어를 잡은 것만 해도 만족할 만한 성과라고 했다.

 “치어 크기를 측정하면 알에서 깨어난 지 얼마나 됐는지 알 수 있죠. 그러면 그동안 이동거리를 추정해 산란 지역의 범위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정확한 지점을 찾아가다 보면 더 큰 성과가 나올 거예요. 제주 북쪽에도 산란 장소가 있다는 것만큼은 분명해졌어요.”

 정부가 고등어 ‘알 잡이’에 직접 나선 데는 이유가 있다. 지난해 연근해에서 잡힌 고등어가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2011년 13만8729t이었던 어획량은 2012년 12만5102t으로 줄었고, 지난해에는 10만2000t까지 내려갔다. 가격은 올들어 한 마리에 3555원으로 최근 5년간 평균(3315원)보다 7% 정도 비싸졌다. 이에 해양수산부 소속 수산과학원이 직접 고등어 종자 관리를 시작했다. 이 실장은 “고등어 자원을 관리하려면 알부터 치어에 이르는 초기 생태 연구가 꼭 필요하다”며 “고등어의 안정적 생산을 위한 자원 회복 연구가 본격화된 것”이라고 말했다. 수산과학원은 제주 주변 바다 20개 구역을 조사 정점으로 설정하고 이 지역을 중심으로 집중 탐사를 하고 있다.

 제주에서 벌어지는 물고기 늘리기 연구는 남쪽에서도 진행되고 있다. 서귀포에서 동쪽으로 19㎞ 떨어진 수산과학원 미래양식연구센터에서는 물고기 10여 종에 대한 양식 기법을 연구하고 있다. 몸값 비싼 종들을 살려내는 곳이다. 제주에서 ‘원조 다금바리’로 불리는 자바리에 대한 양식 연구도 벌써 10년째다. 이곳 김재우 박사는 자바리 어항을 가리키며 양식 성공에 대한 기대를 감추지 못했다.

 “저게 1㎏에 20만원이 넘어요. 서울에 있는 횟집에서 먹으려면 50만원은 족히 줘야 한다는 얘기죠. 이 진짜 다금바리 먹어본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그러니까 양식 연구를 포기하지 못 하는 겁니다. 워낙 자라는 속도가 느려서 그게 제일 어려운데, 꼭 성공해 내야죠.”

 김 박사는 바로 옆에 있는 능성어 양식장을 가리켰다. “보통 국내산 다금바리 드셔 보셨다고 하는 분들은 이걸 먹어본 거예요. 이놈들만 해도 1㎏에 7만~8만원은 족히 하죠. 도시 횟집에서 먹게 되면 아무리 싸게 파는 집도 12만원 정도? 그것보다 싸게 드셨다고 하는 분들은 다 가짜 먹은 거라고. 하하.”

 한편 4세대까지 번식에 성공한 참조기(①)는 이곳의 자랑거리다. 일반 양식장에 기술을 전파할 수 있는 때가 임박해온 것이다. 또 몸 색깔이 파란 관상어도 양식 연구 대상이다. 김 박사는 “세계 관상어 시장이 연간 20조원에 이른다”며 “요즘 기후변화 때문에 파란 물고기(②)가 제주 바다에서 나오는데 이를 잘 살려내 수출 상품으로 키우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제주에선 수산물 종 살려내기가 한창이지만 거꾸로 박멸하려고 찾아다니는 종도 있다. 나무를 갉아먹는 흰개미 가 그 표적이다. 농림축산검역본부 제주본부는 최근 제주시 용담동에 있는 제주 향교에 흰개미 퇴치약인 ‘트랩(Trap)’ 120개를 설치했다. 향교는 제주도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조선시대 유물인데, 이 안에 있는 목조건물을 흰개미가 갉아먹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약을 놓은 것이다. 실제 이곳에선 흰개미가 갉아먹은 나뭇가지가 발견됐다. 흰개미가 쓸고 간 나무토막은 손으로 찢을 수 있을 정도로 너덜너덜해진 상태였다. 오진보 제주검역본부 검역관은 “흰개미가 목조건물 기둥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손쓸 틈도 없이 나무를 손상시킬 수 있기 때문에 예방활동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검역본부의 더 큰 고민은 외래종 흰개미의 유입 가능성이다. 최근 일본에서 가끔 발견되고 있는 흰개미는 토종보다 먹성이 훨씬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어 국내에 유입되면 피해가 클 것으로 당국은 우려하고 있다. 그래서 검역본부는 제주를 포함한 한반도 남부 지역에서 최근 예찰활동을 시작했다. 특히 제주는 외국인 관광객이 타 지역보다 많아 높은 강도의 예찰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탐지견까지 동원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휴가철이 다가오면서 제주여행에 들뜬 내·외국인이 늘고 있지만 오 검역관에겐 그만큼 일거리가 많아지는 셈이다.

 그래도 그는 “사람들이 많이 오고 가는 만큼 더 긴장해서 일해야겠지만 그만큼 방제가 잘되면 나에게도 보람”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향교를 나서는 길, 이파리 끝이 누렇게 변한 풀을 뜯어 가방에 넣었다. “새로운 바이러스가 도는 건 아닌지 조사해 봐야죠.”

제주=최선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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