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공의 진답|허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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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공원 내에서 살다보니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들을 많이 본다. 애써 가꾼 잔디밭에 사랑하는 아이들을 앉히고 사진을 찍는 젊은 아빠, 넘나들지 못하도록 쳐놓은 철책을 뛰어 넘어 어린애들과 아침운동을 즐기는 젊은 부부-남의 담을 넘는 건 도둑이요, 개구멍을 드나드는 건 개라는 걸 모르는지. 어릴 때부터 그걸 분간하도록 가르쳐야 하거늘 지각없는 부모 때문에 이 어린애들이 어떻게 자랄는지 참으로 걱정이 된다. 푸른 그늘을 주는 느티나무에 등짝을 텅텅 치는가하면 양발 바닥을 룩툭 치는 운동이 또한 가관이다.
오장육부가 뒤흔들려야만 장수를 한다는 것일까. 순진한 애들은 저토록 나무를 괴롭히면 그도 사람처럼 비명을 지를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런 어른들의 꼴을 보고 있다. 지난번 어느 분이 박물관에 몇 가지 민속자료를 기증하고 싶다는 뜻을 전해왔다. 그는 고향에서 서울로 옮겨가는데 대대로 쓰던 제사장과 제기 등을 향토 박물관에 전시해두면 아이들이 자라서 긍지를 갖게되고 조상을 생각하게 될 것이며 고향과 마음이 끊이지 않을 것으로 여겨 애들과 상의하여 그런 생각을 하게됐다는 것이다. 얼마나 고마운 마음씨일까.
또 하루는 어느 청년이 청동기 한 점을 기탁하면서 그 동기를 털어놓는다. 이것은 윗대부터 전해내려 오는 것으로 어렸을 때 그걸 아버지 모르게 들고 나가 엿을 사먹으려다가 발각되어 매를 맞았고 귀중하다는 것을 깨달았는데 아버지가 별세한 뒤에 고인의 뜻을 길이 간직하고 싶어서 찾아왔다는 것이다.
이렇듯 훌륭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분이 있는가하면 돈만 된다면 선산 뒤꼭지라도 서슴없이 팔려드는 사람이 있다. 문화재의 도굴과 유출이 끊임없이 행해지는 것은 분명 조상의 얼을 팔아먹는 일이다.
이런 부당한 일로 얻은 재물로 애들을 가르친들 무엇을 배울 것이며 맛진 음식을 먹인들 올바르게 자라갈 것인가.
두 번째 유괴를 당했던 부산의 효주 양을 보라. 죄없는 어린애들이 재물을 얻기 위한 수단이나 원한의 희생이 될 수 있겠는가. 고아원 간판을 걸어놓고 자기 배를 채우던 사이비 사회사업가를 색출한다는 보도가 있다.
이런 부류는 가증스럽다기보다 불쌍한 생각마저 든다. 훈장은「바담풍」하면서 애들더러는 바람풍」으로 가르치려는 어리석음을 어찌하랴. 도둑이 밤일을 나가면서 자식들에게 하는 말이「요즘 도둑이 심하니 문단속을 잘 하라」고 타이른다는 우화가 있다.
요즘 개는 아무나 보면 짖어대기에 그 이유를 물어보니 견공이 왈「주인과 도둑을 분간키 어려우므로 아무렇게나 짖어댄다」는 진답이다. 어쨌든 웃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건 사회나 가정에서나 다같이 새겨둘 진리다.<광주시립박물관장>
▲전남나주출신 ▲ 『현대문학』지 추천시인 ▲동시집 『새싹』, 시집『향나무』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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