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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원들 눈총받으며 불편한 나날…-미국기자단이 전하는 평양취재 1주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평양UPI】『결혼하시오. 그래서 당신네 조국의 문화를 전승할 자손을 번식시키는 것이 의무요.』
1950년 한국전 초기 이후 최대규모로 북한에 들어간 미기자단 중 두 명의 미혼기자들에게 북한안내원이 넌지시 던져주는 충고였다.
제35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취재차 입북한 미8개신문·통신·방송기자단은 지난 한주일동안 북한안내원들의 엄격한 감시를 받으면서 평양 이곳저곳을 시찰했다.

<김일성선전에만 열 올려>
안내원들이 돌려주는 이야기의 대부분은 공산세계에서도 가장 강력한 개인숭배의 대상인 김일성에 관한 선전이다.
이들은「트랙터」공장으로부터 「올림픽」대회에서 딴 금「메달」에 이르기까지 자랑거리가 될만한 일들을 모조리 동원하여 선전을 늘어놓았다.
지난 50년 미종군기자들이 퇴각하는 미군을 따라 평양을 떠난 이후 미국기자들이 대거 이곳을 방문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들은 경기자체를 취재하는 외에 북한이 외국인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 놓은 진열장과 같은 시범농장·공장·백화점·유치원등을 돌아보았다.

<전시용농장·공장만 안내>
북한은 평양방문 미기자단을 소수로 제한하려던 당초계획을 변경, 마지막 순간에 UPI·AP 두 통신과「허스트」계 신문「볼티모·선」지,「월·스트리트·저널」지,「타임」지 및 ABC·CBS 두 방송에 문호를 개방했다.
아침식사때부터 밤 잠자리에 들때까지 모든 기자들은 각자에게 배정된 안내원의 감시를 받는다. 미기자들은 이들을『파수꾼』혹은 북괴 김일성을 빈정대어『어버이 수령』이라고 부른다.
기자들은 모두 북한보안당국으로부터 증명서를 발급받았다. 이론상 기자들은 자유롭게 평양거리를 돌아다닐 수 있으나 실제로 산보라도 해보려는 사람은 추적당해서 결국 정중하게「호텔」로 되돌려보내지고 있다.

<개개인마다 감시원 따라>
『한국말을 모르니 곤란한 일이 생기게 될까봐 보호』한다는 것이 북한측의 공식적인 변명이다.
미기자들은 평양도착 즉시 그림엽서같이 판에 박은「이미지」만을 외부인에 심어주기로 북한측이 단단히 결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들은「도오꾜」에서 온 UPI통신의 일본인사진기자「아까스까·순스께」씨가 미장원·상점등 평양중심가의 모습을 비공식「스탭」촬영하도록 허용해 주었다.

<"한국말 모르니 보호"핑계>
그러나「아까쓰까」기자가 근처공원에서 놀고 있는 어린이들을 찍으려고 하자 냉랭하게 촬영을 금지했다.
대신「아까쓰까」기자는 보다 크고 보다 전시용으로 꾸며진 공원으로 안내되었으나 그곳에는 아이들이 놀고 있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안내원은『「메이·데이」에 또 다른 공원으로 안내해 주겠다. 그때는 어린이를 위한 행사도 있을 것』이라고 변명했다.

<공원어린이도 촬영 못해>
국민학교에서 쉬는 시간에 놀고있는 아이들을 찍으려던 또 다른 기자도 거부당했다. 교사는『아이들이 조직된 행동을 하고있지 않다』는 이유로 촬영을 거부했다.
미국인의 사생활의 자유는 20대중반이면 결혼을 해야하는 북한의 안내원들을 당황케했다. 30대말의 미독신기자들은 아마도 그들이 기혼자였더라면 그렇지 못했을 관심을 끌었다.
평양에 와있는 미국인들에게 가장 어려운 문제 중 하나는 돈이다. 탁구대회 취재차 이곳에 온「유럽」이나 일본기자들과는 달리 미국인들은 통신「크레디트·카드」를 사용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통신료는 현금으로만>
전화난「텔렉스」를 이용한 기사송고는 즉석에서 현금으로 지불하도록 돼있다.
「크레디트·카드」사용이 금지된 것은 미국법에 따라 미국화폐가 북괴로 흘러들어가는 것이 금지돼있기 때문이다.
북한에 와있는 미국인들은 본국의 사무실에 전화를 걸 수 있으나 미국교환양들은 미국에서 평양을 호출하는 전화는 접수하지 않는다.
또 한가지 문제는 비단 미국인에게만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그렇지만 통신료가 유난히 비싸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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