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전술·전략 승리" "이라크 애초 역부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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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전쟁은 미군의 전략적 승리인가, 아니면 약화될 대로 약화된 이라크군의 어쩔 수 없는 패배인가.

이라크 전쟁이 개전 3주 만에 사실상 바그다드의 함락으로 이어지면서 이라크 전쟁의 군사적 측면에 대한 분석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서정민 본지 중동전문기자가 9일 미국.유럽.중동의 전문가들과 전화 인터뷰를 통해 이라크전의 군사적 의미를 긴급 진단했다.


미군의 일방적 승리를 보는 전문가들의 시각은 크게 두가지로 엇갈린다. 일부 전문가는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의 정보기술(IT)을 바탕으로 한 '충격과 공포'작전이 성공적으로 진행된 결과라고 분석한다. 반면 미군의 신속한 바그다드 함락은 이라크군의 상대적인 무기력에 기인한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미국의 전략적 승리를 주장하는 전문가들은 이번 전쟁을 '정보력을 바탕으로 한 정밀전쟁'으로 규정한다. 미 육군대학의 래리 굿선 교수는 "3주 만에 지상군이 5백km 이상을 진격해 바그다드를 접수한 것은 전쟁사에 남을 만한 것"이라며 "이는 치밀한 전략의 뒷받침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스라엘 출신으로 옥스퍼드대에서 중동학을 강의하고 있는 에마뉴엘 오톨렝기 교수도 "연합군의 완전한 공중 장악과 대규모 공습이 주효했다"며 "위성 등 정보통신장비를 이용한 정밀 공습으로 지상전에서 큰 인명피해가 없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전략의 효율성을 강조한 이들 전문가는 '효과적인 심리전'에도 높은 점수를 준다. 굿선 교수는 "미군이 바그다드의 완전 장악을 서두르지 않고 포위한 상태에서 후세인 대통령에 대한 표적 공습 후 사망설을 유포하는 등 다양한 심리전을 폈다"며 "그 결과 이라크 군부가 스스로 붕괴하는 현상이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는 이 같은 '신군사 전략의 성공' 주장은 지나친 과장이라고 지적한다. 이들은 이라크에 대한 지난 12년간의 경제제재와 미국과 영국의 지속적인 공습으로 이라크 군사력의 대부분이 전쟁 이전에 이미 무력화됐다고 주장한다.

덴마크의 디에트리히 융 교수는 "경제제재로 대부분 공장의 가동이 멈추면서 군수물자 공급이 어려웠을 것"이라며 "경제제재가 전쟁 개시 이전 이라크의 전쟁 수행능력을 상당히 약화시켰다"고 말한다.

융 교수는 또 "개전 초 보급선 확보에 문제점을 드러냈고, 남부 및 중부의 도시들에서 이라크인들의 지지 확보를 과신했던 연합군이 전략적 승리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자기방어적 논리"라고 지적했다.

레바논 출신의 아스아드 아부칼릴 교수도 "처음부터 상대가 안되는 게임이었다"며 "전투기 한대도 동원하지 못하고 버젓이 줄지어가는 탱크에 발사할 대전차 로켓포도 없는 이라크군의 전력을 고려할 때 미국이 아니라 다른 어느 국가도 이라크를 쉽게 공략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아부칼릴 교수는 "이라크의 방공망이 전쟁 이전 미.영군의 공습으로 80% 이상 파괴됐고 약 3백대의 이라크 전투기도 부품과 정비 부족으로 무용지물이 된 상태에서 경제제재로 탄약 공급마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면 어떻게 전쟁을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에 대해 '전략적 승리'지지 입장을 표명한 두 교수는 경제제재와 공습의 제한적인 성격을 강조한다.

굿선 교수는 "중동의 언론이 경제제재와 공습이 이라크 전력에 영향을 준 정도를 확대 해석하고 있다"면서 "전쟁 이전 미국과 영국의 공습이 이라크군의 전력에 타격을 준 것은 사실이나 북부 및 남부 비행금지 구역에 집중돼 전체 전력에 막대한 피해를 준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오톨렝기 교수도 "경제제재가 신무기 개발과 생산에는 결정적인 타격을 줬지만 이라크는 엄청난 양의 무기를 전쟁 이전에 보유하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두 교수 모두 "경제제재가 이라크 정권을 목표로 했지만 실질적인 피해자는 정권이 아닌 국민이었다"며 경제제재가 실패로 끝났음을 인정했다.

서정민 중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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