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에 경영 노하우 접목, 지난해 매출 10억 달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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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승종 대표가 농장에서 탐스럽게 영근 블루베리를 수확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올해 40여t을 생산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채원상 기자

은퇴 이후 삶을 고민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농촌으로 돌아가 농사나 지을까’ 하는 생각을 한 번쯤 해봤을 것이다. 생활이 팍팍하게 느껴지면 마지막 희망의 터전으로 떠오르는 농촌. 그러나 전원생활에 대한 막연한 동경으로 농촌으로 들어갔다가 정착하지 못하고 다시 도시로 돌아가는 사람이 적지 않다. 반면에 철저한 준비와 노력으로 성공 귀농의 꿈을 이룬 사람도 있다. 중소기업 전문경영인에서 지금은 블루베리 농장주로 제2의 삶을 살고 있는 블루베리코리아 함승종(64) 대표다. 지난 12일 천안시 입장면에 있는 그의 블루베리 농장에서 그를 만났다.

‘상품’이라 생각하고 철저한 사전 조사

‘블루베리코리아’라는 안내 표지판을 따라 농장 입구로 들어서자 10만㎡ 넓은 땅에 3만 그루가 넘는 나무가 촘촘하게 자라난 모습이 장관이었다. 나무 사이사이로 분주하게 움직이는 수십 명의 손길에 나무에 알알이 영근 탐스러운 보랏빛 열매가 바구니로 옮겨진다. 올해 첫 수확 날이다. 날랜 몸짓으로 수확하는 인부들 가운데 유난히 블루베리를 정성스레 만지는 청바지 차림의 중년 남자가 눈에 띈다. 농장 주인 함승종 대표다.

 농장주가 되기 전 그의 이력이 독특하다. 문구용품 바른손과 침구회사인 이브자리 계열사 코디센 최고경영자(CEO)를 역임했다. 전문경영인으로 살아온 함 대표가 번듯한 양복을 벗고 청바지를 입은 농사꾼이 된 이유가 궁금했다.

 “2000년대 초반 회사가 기업합병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대표직에서 물러나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왔어요. 도시가 아닌 전원에서 제2의 인생을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게 들더군요. 많은 고민과 준비 끝에 새로운 도전을 꿈꾸며 2003년 천안으로 내려와 본격적으로 블루베리 농사를 짓게 됐습니다.”

 함 대표는 귀농을 준비하면서 경쟁력 있는 작물을 찾던 중 블루베리를 알게 됐다. 당시만 해도 블루베리는 시중에 널리 알려지지 않아 선뜻 결정하지 못했다. 하지만 100g을 수확해 가장 많은 수익을 낼 수 있는 것으로는 이만한 게 없겠다는 판단이 섰다.

 “농업도 경영처럼 접근했어요. 어떤 일을 하든 결과적으로 수익이 있어야 발전하고 지속할 수 있으니까요. 블루베리는 이미 미국이나 유럽·일본에서 꾸준한 수요가 있었기에 농사를 지어 해외로 판로 개척을 하면 승산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의 경영 노하우를 귀농에 접목시킨 셈이다. 블루베리를 하나의 ‘상품’이라 생각하고 철저한 사전조사를 통해 수확 후 순이익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유통구조를 꼼꼼히 살폈다.

 “국내에 있는 자료만으로는 블루베리 시장을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었습니다. 내가 지을 농사인데 대충대충 이해하고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었죠. 블루베리 시장이 활성화돼 있는 미국을 여러 차례 방문해 농장을 견학하며 공부도 많이 했습니다.”

 귀국해선 시험 농사를 짓고 있는 블루베리 연구농장을 찾아가 자료를 수집하는 등 갖은 노력 끝에 농사를 시작해 3년여가 지난 2007년 첫 열매를 땄다. 그런데 그해 블루베리가 건강에 좋다는 입소문이 국내에 퍼졌다. 덕분에 그는 수확 첫해부터 연간 7억~8억원의 안정적인 매출을 올릴 수 있었다. 지난해에는 총 40여t의 블루베리를 수확해 10억원이 넘는 매출을 달성했다. 올해 수확 물량도 지난해와 비슷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수확한 블루베리는 대부분 전국 대형마트와 백화점으로 유통되고 일부는 홈페이지를 통해 온라인으로 판매된다.

70년 이상 안정적으로 수확 가능

블루베리는 나무를 심은 후 3년 정도 지나면 수확이 가능하다. 이후 70년 이상 같은 물량을 지속적으로 생산해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이 때문에 함 대표는 블루베리를 ‘연금나무’라 부른다.

 “블루베리 농사는 처음 3년간 고비만 넘기면 이후에는 안정적인 수익 창출이 가능합니다. 우리가 100세 시대를 산다고 가정해도 평생을 넘어 후손에게도 물려줄 수 있는 나무가 되는 거지요.”

 그는 자신처럼 성공 귀농을 꿈꾸는 예비 귀농인을 위해 농장 문을 활짝 열어놓았다. 보고 체험하는 것처럼 좋은 공부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함 대표는 농장에서 연간 3회 정도 초보 농업인을 위한 교실을 열어 멘토 역할을 한다.

 “귀농은 ‘이직’이 아니라 ‘전직’이에요. 너도나도 귀농을 쉽게 보고 무작정 농촌으로 오는 게 안타까워요. 농업정책도 마찬가지예요. 양적인 성장에 치중하기보다는 귀농·귀촌한 도시민들이 농촌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내실을 다져야 해요. 이를 위해 귀농하면 농촌에서 안정적인 소득을 얻기까지 겪는 초기의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해 주는 정책적 배려가 필요합니다.”

  문의 www.blueberrykorea.co.kr

이숙종 객원기자 dltnrwh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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