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한국문학…무엇이 문제인가<1>|독자없는 시의 양산|성찬경<시인·성대교수·영문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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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70년대는 한국문학사상 가장 중요한 시대였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와 같은 풍요의 배후에는 우리문학을 피폐케하는 많은 요소들이 도사리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70년대를 막음하고 80년대를 맞게되는 이 시점에서 과연 오늘날의 한국문학이 안고 있는 문제들이 무엇인가, 「장르」별로엮어본다.【편집자주】
우리나라에는 시인의 수가 시독자의 수보다도 많을 것이라고 빈정대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듣기는 민망하지만 일리가 있는 말이기도 하다. 시는 엄청나게 많이 생산되는데 거기에 호응하는 독자의 관심과 흥미는 항상 예상을 밑돈다는 뜻이다.
일단 우리나라 시의 광장이 많은 독자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고 전제하고서, 그 요인을 분석해 보고자 할 때 거기에는 생각보다도 깊고 어려운 문제들이 내재해 있음을 알게된다.
1년에 생산되는 시는 다달이 나오는 주요 문예지·시지를 7, 8종으로 보고 한 잡지에 약 20편씩 실리는 것으로 계산한다면 줄잡아 2천편이라는 숫자가 나온다.
게다가 또 계간지 및 미발표 개인시집까지 합친다면 무려 3천편에 가까운 시가 생산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과연 대단한 양이다.
한편 시독자의 숫자를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아무리 많이 잡아도 5천을 넘지못하는게 아닌가싶다. 최근에와선 시집이 재판, 3판씩 나간 경우도 있다고 하니 시독자가 적어도 수년전에 비해서 많이 불어난 것으로 볼 수있으나 그렇다고 시가 대중화됐다거나 그 과정에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우선 이렇게 시가 차차 보급돼가는 요인을 생각해보자. 첫째는 문학사적으로 볼때에 우리 나라 문예애호가들의 관심이 이제는 차차 시에까지도 와서 닿을 때가 되지 않았나 싶은 점이다. 둘째로는 해방이후 일관해서 각종 「매스컴」이 보여준 그 꾸준한 성원이다.
이것은 시에 관한 한 우리나라는 아직도 계몽주의시대에 있다는 것을 의미할것이다.
시는 아무래도 한나라 문화의 (아니면 문학의)정화다. 우리나라에도 시문학의 강성이 없을 수가 없다. 이러한 식자층의 자각이 그러한 시의 후원으로 나타난 것일 것이다.
그 세쩨의 요인으로는 요즘에는 독자를 당혹케하는, 경우에따라서는 독자를 우롱하는 60년대식의 사이비 난해시가 많이 자취를 감추고 있다.
요컨대 본질적으로 좋은 시를 쓰면 독자는 생기게 마련이다. 이렇게 볼 때 독자가 시를 외면하는 책임의태반은 기실 시인 쪽에 있다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독자가 없어도 좋다고 생각하는 시인들이 아직도 많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가 번창하려면 거기에는 또 많은 여건이 따른다.
우선 현대는 본질적으로「비시의 시대」라는 점을 꼽을 수 있다. 현대는 과학의 시대다. 아니 그보다도 차라리 정치의 시대다. 정치가 일체의 문화내용 위에 군림한다. 현대에서 정치의 영향을 받지 않는 문화내용이란 생각하기 어렵다. 정치와 과학은 아무래도 시보다는 산문 쪽이다.
따라서 현대는 본질적으로 산문의 시대인 것이다. 그러므로 시의 고전은 우리나라에만 한정되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시인으로서 또하나 어려운 문제는 그때 그때 쓰이는 시가 독자의 호응을 받는다는 것이 반드시 시의 수준의 향상을 의미하는가 하는 점이다. 시적현실은 아마 산문의 뜻이 지니는 현실보다도 그 시간적인 폭이 더 넓은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예컨대 윤동주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왜제말기에 윤동주가 시를릍 썼을때엔 독자란 거의 없었다. 그러나 40년이 지난 오늘날에 와선 널리 애송되고 있다.
더 심한 예는 18세기말의「윌리엄·블레이크」의 경우다. 생존시엔 몇 사람의 친구를 빼놓고는 광인취급을 받았던「블레이크」였지만 요새와선 어느 의미에선 바야흐로「블레이크」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오늘날 우리시단에 눈을 돌려 보면 우리 시인들이 과연 그러한 시간개념을 의식하고 있는가를 생각해보고 싶다. 그와 함께 우리시인들의 시를 쓰는 자세가 너무 안이한 것이 아닌가 하는것도 따져 봄직하다.
또 하나 지적해두고 싶은 것은 우리나라에 있어서 시에 대한 깊이 있고 양식있는 비평기준이 과연 확립돼있는가 하는 점이다. 시의 옥석이 뒤섞인채 거의 도매금으로 넘어가버린다. 이것은 비단 비평가뿐만 아니라 시의 비평을 대하는 독자도 포함해서 하는 말이다. 시가 아무리 많이 쏟아져나와도 좋은 시에 대한 선별이 뚜렷하면 좋지않은 시는 자연히 도태되게 마련이다.
이상과 같은 여러여건이 종합적으로 해소될 때 독자없는 시의 양산에 대한 평가와 미래에 대한 전망이 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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