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와 에스프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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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영국의 노동당정권이 무너지던 날, 의회의 풍경은 사뭇 인상적이다. 그렇게 흐뭇할 수가 없다. 한 정권의 향배가 달린 바로 그런 중대한 문제를 토론하고 결정하는 과정이 여간 자연스럽지 않다.
비유하자면, 「스카치·위스키」의 찌르는 듯한 맛보다는「커린스」따위로 희석한 은은하그 향기 감도는, 그런 맛이다.
본사특파원의 현지방청기에 따르면 바로 불신임을 받은 당사자인 「캘러현」수상마저 연단에 서서 끝까지「유머」를 잊지 않았다. 소삭정당들이 그에게 반기를 드는 것을 보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역사이래로 칠면조가「크리스머스」를 앞당기자는 제안에 찬성표를 던지겠다고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 「유머」와 웃음소리. 한정권이 물러나야하는 마당에 살기도, 흥분도 없다.
흔히「유럽」사람들의 기질을 얘기할 때 영국인의「유머」와「프랑스」인의 「에스프리」 를 든다. 「에스프리」와 「유머」의 차이는 무슨빛깔의 차이처럼 분명하지는 않다.
그러나 「유머」는 「유쟁시의 방위형」이고. 「에스프리」는 공학형이라고 풀이하는 사람도 있다.
가령 이런 예화가 있다. 어떤 돌팔이 의사가 사냥을 나갔다. 그는 사람들로부터 물론 존경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경우, 영국인이라면 그 의사를 보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이 근방의 새나 토끼도 건강보험에 들어있읍니까?』
하지만「프랑스」사람이라면 그렇게는 말하지 않는다.
『선생, 이제 환자에는 식상하셨군요?』 좀 더 직설하면「환자사냥」에는 싫증이 났느냐는 뜻이다.「프랑스」인과 영국인의 기질을 짐작 할 수 있다. 문제는 그 누구도 의사에게 삿대질을 하거나 시비를 걸지 않았다는 데에 있다. 「프랑스」의 유명극장에는 중년의 여자가 좌석 안내를 하는 모양이다.
그런 친절의 혜택을 받은 손님은 으례 「팁」을 주게 마련이다. 그런 때는「팁」이 적을 수도 있다. 이럴 때면 그 「안내부인」이 손님의 귀에 대고 속삭이는 말이 있다. 그 영화의 머리를 알려 주는 것이다. 추리영화의 경우 범인은 누구라고.「에스프리」의 정신이라고 할까.
영국은 황태자까지도 「유머」꾼인 모양이다. 언젠가『보도의 유와 「센세이셔널리즘」 』이라는 묘한 제목의 연설을 하면서『나는 세계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직업의 대표로서』 라고 곤서두를 꺼냈다.
장내는 폭소. 「기춘부」가 바로그런 직업(?)이기 때문이다.
노동당이 부신임을 당하던 날, 그 부신임안을 제출한 보수당의원들이 「갤러헌」수상을 칭찬 (?)한 말도 인상깊다. 『처형장에선 사람이 총살대를 향해 총을 쏜 사상유례없는 행동』 이라는 것이다.
정치의 세계에도 이런 여유와 미소가 좀 있었으면 국민은 얼마나 어깨가 가벼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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