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국보 복원 연구소, 미등록 업체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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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소재의 한 사립대 문화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박모(53·여)씨는 문화재 보존 분야에서 손꼽히는 전문가다. 박 교수는 1994년 서울 상도동에 J문화재보존연구소를 차린 뒤 20여 년간 국보급 문화재 239점을 수리했다. 국립고궁박물관·서울대 규장각 등의 제한입찰에 참여해 ‘태조어진’(국보 제317호·태조 이성계의 초상화) 등의 수리를 수주했다. 그가 문화재 수리 사업으로 번 돈은 13억8000만원. 하지만 그의 문화재 복원 작업은 불법이었다. 연구소가 미등록 업체였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2011년 3억원 규모의 서울대 규장각도서 ‘승정원일기’(국보 제303호·사진) 복원 사업을 따냈다. 당시 직접 복원하겠다고 해 놓고 수리 기간 6개월 중 2개월여는 미국에 체류하면서 수리를 연구원에게 맡긴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 광진경찰서는 정식 등록절차 없이 국보·보물급 문화재를 수리·보존 처리한 혐의(문화재수리 등에 관한 법률 위반)로 박 교수와 국립 현대미술관 문화재 담당 5급 사무관 차모(58)씨 등 4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24일 밝혔다. 현행법상 문화재 복원 업무를 하려면 기술 능력자 3명과 자본금 5000만원 이상 등의 요건을 갖춘 뒤 지방자치단체에 문화재 수리업체로 등록해야 한다.

 경찰에 따르면 차씨는 2011년 자택 거실에 문화재 수리 시설을 갖춘 뒤 동생과 함께 미등록 문화재 복원업체를 운영해왔다. 차씨는 ‘청주 보살사 영산회괘불도’(보물 제1258호) 등 사찰의 불교회화를 주로 수리해 왔다고 한다. 차씨 등은 수리 하도급을 받거나 제한입찰 등에 참여해 2억8000만원 상당을 챙겼다.

 경찰은 또 미등록 업체에 문화재 수리 하도급을 준 보존과학업체 대표 전모(46)씨 등 17명과 문화재 수리 자격증을 불법 대여해준 김모(60)씨도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고석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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