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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현의 네 번째 호남 도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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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정하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정하
정치국제부문 차장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7·30 재·보선에서 전남 순천-곡성에 출마할 예정이다. 최근 새누리당 당적을 회복한 그는 고향인 곡성에 주소지 이전까지 마쳤다. 그에겐 네 번째 호남 도전이다. 이 전 수석에 대한 정치적 평가는 별개로 하더라도 그의 순천-곡성 출마 자체는 의미 있게 볼 수밖에 없는데, 왜냐하면 여권 유력 인사 가운데 호남에 지속적으로 출사표를 던진 인사는 그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사실 새누리당에도 호남 출신이 꽤 있다. 하지만 당의 기반이 영남권이다 보니 호남 출신들은 지역 색깔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지역구도 대부분 수도권이지 고향에서 금배지를 달아보겠다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런 당내 분위기에서 이 전 수석은 새누리당의 호남 진출을 필생의 과업으로 생각하는 독특한 인사다.

 그는 1995년 광주 광산구 시의원 선거에 민자당 후보로 출마해 10.1%를 얻었다. 2004년 탄핵 역풍이 거세게 불던 17대 총선에선 광주 서을에 출마했는데 유효투표 6만9438표 가운데 고작 720표를 받았다. 이런 망신을 당했으면 포기할 만도 한데 그는 뜻을 접지 않았다. 그가 19대 총선 때 수도권 출마를 노렸다면 공천이 불가능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당의 오너였던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는 18대 비례대표 의원을 하면서 줄곧 내걸었던 광주 출마 공약을 진짜로 결행했고 2012년 총선 때 광주 서을에서 39.7%란 괄목할 성적을 올렸다. 당시 광주 서을에서 야권연대가 없었다면 당선도 노려볼 만한 득표율이었다.

 이 전 수석의 사례는 새누리당이 장기적인 플랜을 세우고 호남 인재들을 양성한다면 호남에서 충분히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호남이라고 보수성향 유권자가 왜 없겠나. 새누리당이 워낙 인적 투자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찍고 싶어도 인물 경쟁력을 갖춘 후보가 드문 게 문제다. 하지만 호남 유권자들도 새정치연합의 장기 독식에 넌더리를 내고 있다. 지난달 지방선거 때 호남에서 무소속 돌풍이 발생한 게 그 증거다.

 현재의 야권의 차기 주자 ‘빅3’인 안철수·문재인 의원, 박원순 서울시장은 공교롭게 모두 PK(부산·경남) 출신이다. 이게 우연의 일치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오래전부터 야권이 영남권 공략 없이 정권 탈환은 불가능하단 판단하에 영남 인사들을 배려한 결과다. 야권의 장기 투자는 결실을 거두고 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부산에선 거의 판을 뒤집을 뻔했고, 대구에서도 40.3%(김부겸)란 깜짝 득표율을 올렸다.

 새누리당의 영남 지배권은 앞으로도 계속 약화될 게 틀림없다. 그렇다면 새누리당은 ‘서진(西進)’에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서진’은 호남뿐 아니라 호남 출신 수도권 유권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당장 가시적 성과를 거둘 순 없겠지만 전략적 의지만 확고하면 언젠가 큰 수확을 거둘 수 있는 투자다. 새누리당은 제2, 제3의 이정현을 계속 배출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당의 미래가 어둡다.

김정하 정치국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