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도르」는 싫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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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이란」 에선 연일 「여성데모」 가벌어지고 있다. 「블루진」과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성들은 수만명이나 가두로 쏟아져 나와 주먹을 휘두고도 있다.
「데모」대의 구호는 『「차드르」를 벗자』 -. 회교지도자 「호메이니」 가집권하고 나서 모든「이란」여성들은「페르시아」시대로돌아가라는 요구를 받고 있었다.「페르시아」 시대의 전통적인 복장은 「차드르」.「이란」 사람들은「차도리」「차다」 라고도 한다.. 「이란」 여성의 옷은 우리 한복만큼이나 절차가 복잡하다. 「샬리테」 라는 모직의 속옷을 입고 그위에「샬보르」라는 목면의바지를 껴입고, 위에는 「질레」 라는 웃도리에 「숄」모양의 「차르가도」 를 두른다.
이처럼 겹겹이 껴입은 여성이 외출을 할때는 또 「차도르」 라는 「망토」를 뒤집어 써야한다.
검은천으로 머리에서 발목까지 덮는 일종의 흑복면.
필경 모래바람이 잘날 없는사막지대에선 필요에 따른 복장이었을것 같다.
「차도르」는 원래「코란」의 가르침에서 비롯되었다.여성은 누구인지 분간을 할수 없게 얼굴을가려야하는 것이다.따라서 10세만되면 외출할때 그것을 뒤집어써야한다.
그러나 1925년「리자·칸·팔레비」 왕이 「혁신정치」 를 표방하고나서는 「생활의 현대화」 를 외치며 모든 여성을「차도르」로 부터 해방시켰었다. 1936년부터는 법률로 그 착용이 금지되기까지 했다.
요즘의 「테헤란」 에는 초「미니」의 여성들이 활보하고 있는 형편이다. 직장여성들가운데는 노상에서 담배를 피워무는 것이 예사며, 화장도 여간 짙지 않다. 여대생은 물론 국민교 여교사들조차도 자유풍이다.
개화 「차도르」까지 등장, 흰바탕의 천에 화려한 꽃무늬를 넣은 것을 걸치고 대로를 나다니는 여성도 적지 않다.
그나마「차드르」를 걸친 여성은 완고한 집안출신 아니면 국민교육도 받지못한 여성들일 경우가 많다. 이들마저도 얼굴을가리는 불만을 손목이나 발에서발산하고 있다.호화찬란한 팔찌를 대여섯개씩 두르고,발엔 요란한 장식을 한 구두나 「부츠」 까지 신고 있다.
이들 여생의 개화를 위해 「팔레비」왕은 왕비 「파라」의 권고로 지난77년1월 「여성성」을 두고 장관까지 임명했었다.
그런개화의 「무드」를 즐기던여성들에게 하루아침에검은「망토」를 다시 뒤집어 씌우려는「호메이니」 의 고집이 통할리 없다. 결국 그것은「권고사항」일 뿐이라고 「호메이니」는 그답지않은 「제스처」를 보여주었다. 「이란」에도 「호메이니」보다 강한 사람이있었던가보다.
한낱 복장에 있어서도 「자유」의 맛을 본 사람들은 쉽게 그것을 잊어버릴 수도 포기할 수도 없다는 웃지못할 애교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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