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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와 김소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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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무형문화재 재5호의 기능보유자 금소희여사가 10일 세종문화회관에서 기념공연을 갖는다.외줄기 국악에 50년이나 몸바쳐온 여사다. 노래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이만저만 감회가 깊지 앉을 것이다. 창·가야금·승무·창극등 여사는 국악의 모든것을 익혔다. 일인일예라지만 그녀는 서예에서까지 그녀나름의 세계를다졌다.
예도란 재주만으로 되지는 않는다. 부단한 정진이 있어야하고 보람과 긍지를느낄 수 있어야한다.
그녀는 무엇보다도 판소리를 위해 한편생을 연소시켜 왔다.
『…남들은 외곬로 용케도 걸어왔다고들 하지만 스스로 과거를 생각할때 과연 50년동안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었는지 허전합니다.』여사의 심정을 우리는 짐작할만도 하다.그러나 그녀는 우리에게 판소리를 남겨주었다.
판소리의 어원에 대해서는 아직도 정설이 없다.
한판 벌려놓고 소리를 듣는다해서 「판소리」라 한다는설이 있다. 악조를 뜻하는 중국말에서나온 판창에서 나왔다는 설도 있다.
그 기원에 대해서도 말이 많다. 교과서에서는 소설이 먼저고 판소리가 나중이라 적혀있다.하나, 사실은 판소리가 먼저라고 봐야 얘기가 된다.
판소리를 누가 만들었고. 그게누구를 위해 생겨났느냐는 것도 밝히기가 좀 힘들다.
한판 벌릴 때 상좌에는 양반이 앉았다. 이조말에는 대원군도 판소리의 애호자였다.
그러나 그것은 완전히 양식화된 다음의 판소리였다. 당초에는 어디까지나 서민의 생활의 애환에서 나온 것이라 봐야할 것이다.
가난하고, 눌리고있는 ,그러나 어진 사람들의 울분이 십장가로되고, 춘향전을 낳았고, 그 소박한 가치관이 심청가를 낳았다.
따라서 열두마당이 모두 어느한사람의 손으로 된것이 아니다. 여러 해를 두고 사람들에 의해다져지고 바뀌어진 것이다.
춘향전에서 얘기 앞뒤가 잘맞지 않는것과 또는 민요·잡가·경문들이 흔히 끼어있는 것도 이런 때문일게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판소리가 어디까지나 옛시대의 서민을 위해 서민들이 만들어낸가장뛰어난민중예술의하나였다는사실이다.
따라서 옛 판소리에서 우리는 옛 민중의 입김을 찾는다. 그리고흔히 역사책에서 밝혀져 있지 않은, 그러나 우리네 핏속에 분명들어있을 우리의 참다운 얼을찾아 낼 수가 있다.
김소희여사는 이런 다시없이 소중한 예술을 우리에게 넘겨준 것이다. 그녀는 얼마든지 자랑스러울수 있는 한평생을 살아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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