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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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1월6일 남북호는 「오스트레일리아」서남방의 남위44도30분 해역에서 남진하다가 초속30m 파고15m 파랑1백m의 태풍을 만났다. 최고시속 17「노트」의 이배는 3「노트」이상 나갈수가 없었다. 배를 산마루 위에 밀어올리는가하면 다시 깊은 계곡밑으로 밀어넣는 파도의 희롱을 이틀동안이나 견디다못한 남북호는 할수없이 선수를 북쪽으로 돌렸다가 서진하여 다시 남진하는 우회항해를 하지않을수 없었다.

<파고18m 처음경험>
원래 남극은 5∼6개의 저기압으로 둘러싸여 있어 그 주변에선 항상 바람과 폭풍이 심하다. 그래서 그곳을 지나는 항해가나 탐험가들은 남위40∼50도 해역을 「로링·포티스」(roaring forties·노만의 40도대)라고불렀다.
1911년 일본최초의 남극탐험가인 「시라세」(백뢰?)를 태우고 갔던 2백4t급의 세돛짜리 범선 개남환은 파고 15m의 파도에 기습되어 위기를 당했었다. 당시 「노무라」(야촌직길)선장은 운항을 항해사들에게 맡기고 해도실에 들어가 무릎을 꿇고 부처님께 기도만 드렸다고 전해지고 있다. 태풍대를 지나 남극 수렴선(수렴선·한류와 애류의 경계선)을 넘어 남위56도에 이르니 빙산이 보이기 시작했고 64도부터는 빙산과 정빙(바닷물이 얼어서된 두께 3∼4m의 얼음군)이 빽빽이 바다를 덮고 있는 결빙대였다. 이것은 남극의 제2방위선이다. 1월26일새벽 남북호는 결빙대를 돌파하려다 도저히 뚫고 나갈수가 없어 뒤돌아섰고 해양조사와 「크롤」조업은 결빙대북쪽에서만 이뤄졌다.
결빙대를 넘어서 대륙에 접근한다해도 해안가엔 높이39∼40m의 빙벽이 막아서있고 이 제3방위선을 돌파하여 남극에 상륙하면 거기엔 평균 섭씨영하50도의 혹한과 초속40m이상의 폭풍설, 통행을 가로막는 「크리배스」(얼음의귀열)가 기다리고있다.
남북호는 27일간 남빙양 어장에 머무르는동안 4차례나 폭풍을 만났다. 두번은 파고 7∼8m의 경량급이어서 작업을 강행했으나 1월3l일엔 초속 43m, 파고18m의 폭풍이 몰아쳐 조업을 중단하고 어장내에서 피항해야했다. 22년간 해상생활을 했다는 박형관어로장은 그가 겪은 「최고의 파고」라고 말했고 승선자중엔 유서를 써놓은 사람까지 나타났다.
그러나 4번째의 폭풍은 더욱 험한것이어서 남북호는 더이상 견뎌낼수가 없어 2월9일 어장을 벗어나와 피항중 다시 돌아가지 못하고 귀국길에 오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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