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정의·양심에 다짐한-3·1정신에 산다|3·1 운동·민족 대표와 그 후손들의 오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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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나라의 자주 독립을 선언, 온 겨레가 궐기한 기미 독립 운동-. 3월1일로 그 60주년을 맞는다. 선열들의 피가 밑거름 되어 광복을 되찾은지 34주년.
독립 만세 운동의 주역이었던 민족 대표 33인 중 생존자와 주역들의 후손들은 오늘을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본사 전국 취재망을 통해 이들의 생활을 살펴본다.
유일한 생존자는 연당 이갑성 옹. 올해로 93세를 맞는다. 지난겨울부터 기관지염이 악화돼 이번 60주년 3·1절 기념 행사에는 참석하지 못 할 것 같다는 이 옹은 『자유·정의·양심을 구체화시킨 3·1운동의 정신이 절대 퇴색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작년까지만 해도 옛 동지들의 후손을 찾아, 살아가는 형편을 돌아보기도 했으나 요즘은 자택 (서울 용산구 효창동 5의 113)에서 몸져누워 2남 용희씨 (통일원장관) 장녀 선희씨의 병간호를 받고 있다.
최린 선생 (천도교 대표)의 장남 최혁 옹(87·서울 도봉구 수유동 482의 57). 당시 27세의 젊은이로 부친을 따라 「파고다」 공원 만세 대열에 참가했던 최 옹은 『요즘 학생들은 조국관이 너무 약하다』고 나무란다.
매년 이날만 되면 그때의 함성이 생생히 되살아난다는 최 옹은 6·25때 납북된 부친을 향한 애틋한 정이 더욱 살아나 조국 통일의 염원이 꼭 이뤄지길 빈다고 했다. 5남 5녀의 자녀를 두고 장사를 하는 3남 공현씨 (32)와 함께 불편 없이 지내고 있는 최 옹은 3월l일이면 온 가족을 모아놓고 선열들의 독립 투쟁사를 자세히 되새겨준다.
3·1운동의 산실이었던 천도교 교당 봉황각 (서울 도봉구 우이동 254) .
당시 천도교 교령이었던 손병희 선생의 미망인 주옥경 여사 (80)가 이곳을 지키고 있다. 주 여사는 작년까지만 해도 교당 옆 선생의 묘소를 아침저녁 참배했으나 요즘은 노환에 몸져누워 외손자 김재성씨 (62·사업)의 간호를 받고 있다. 3·1절을 전후해 찾아오는 천도교 여성 회원들이 유일한 방문객.
원호청 독립 운동사 편찬 위원회 사무국장 권영창씨 (57·권병덕 선생 장남)와 광복회 의전부장 나상윤씨 (62·나인협 선생 3남)는 33인 유족회에서 회원들의 복지를 위해 일하고 있다. 이들은 『33인들은 일제의 감시를 피해 다니며 독립 운동을 하느라 가정을 돌보지 못해 그 유족들은 거의가 빈곤하게 살고 있다』며 3·l 기념관을 세우기 위해 이리저리 뛰고있다.
회사 경비원이나 맛벌이로 생계를 잇는 후손들도 있다.
33인의 유족 중 홍기조 선생의 장손 홍춘원 (58·인천시 북구 일신동 98의 8)·홍병기 선생의 장손 홍재웅 (44·인천시 중구 신생동 24)·유효창 선생의 차손 유여대( 44·충남 연기군 조치원읍 침산동 87의 28)·박준승 선생의 장남 박성래 (62·전북 정읍군 정주읍 신경동 230의 5)·신홍식 선생의 장손 신덕수 (50·서울 마포구 도화동 347의 22)·임예환 선생의 양손 임화보 (66·서울 영등포구 신길 2동 185)·권동진 선생의 증손 권혁방 (42·서울 강남구 암사동 시영「아파트」37동 107)·김완규 선생의 장손 김몽한 (54·서울 성동구 행당 3동 340의 80)씨 등 8명은 회사 경비원·수위나 하루벌이 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가지만『어른들의 뜻을 받들어 정직하고 떳떳하게 살고 있다』고 자랑스레 말한다.
특히 권혁방씨는 서울대 상대까지 나왔으나 교통사고로 불구의 몸이 되어 직장마저 잃은 채 9평짜리 임대 「아파트」의 방 하나를 전세 주고 모친과 3남 1녀가 단간 방에서 살고 있다.
홀로 외롭게 살아가는 유족도 있다. 박동완 선생의 장남 호희씨 (73)는 유일한 혈육이었던 장녀 재수 (41)·재영 (39)씨가 결혼, 미국으로 떠난 뒤 경기도 시흥군 광명리 광복「아파트」에서 사무실 방을 빌어 혼자 기거하고 있다. 이필주 선생의 장남 이동윤씨 (73·인천시 북구 부평 4동 10의 247)는 외아들 현기씨 (48)가 「캐나다」로 이민을 떠나 부인과 단 두 식구가 산다.
신석구 선생의 장손 성균씨 (53·대구시 남구 대봉동 167의 3)가 사법서사로, 길선주 선생의 장손 낙영씨 (66·서울 관악구 신림 8동 776의 2)가 2남 원철씨 (강원 산업 자재 과장)와 함께, 오세창 선생의 3남 일용씨 (62)가 성북 구청 사회과장으로, 최성모 선생의 손자 명기씨 (52)가 대한재보험 총무과장으로, 이종훈 선생의 증손 동성씨(45)가 현역 해병 대령으로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다.
33인의 유족들이 국가로부터 받는 연금은 월 4만8천원. 자녀 학비 면제 등을 받고 있지만 일부 유족들은 납북 등의 이유로 원호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매년 5월이면 33인 유족 친목 야유회를 주최해온 이동성씨는 『함께 생명을 걸고 거사했던 조상들의 유족이 일부나마 어려운 생활을 하고 점점 소외감을 느껴 모이기조차 꺼리는걸 볼때 가슴이 아프다』며 독립 운동 60주년을 맞아 유족 생활 안정을 위한 사업에 각계가 적극 참여해 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전국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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