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약한 현대미술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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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국 현대미술의 정리, 보존 및 길잡이 역할을 하는 국립현대미술관이 금년으로 개관 10주년을 맞이하였다.
현대미술관은 국·공·사립의 어떤 형태든 한국 내에 단하나 밖에 없는 시설이기 때문에 이 국립기관의 존재는 그 맡은바 소임이 막중하다 아니 할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현대미술관의 발족은 69년에 창설된 이 국립현대미술관이 처음이며, 그동안 미술인구의 격증에도 불구하고 더는 설치되지 못했다. 과거 일제 하에서는 이왕가미술관(전덕수궁미술관)이 현대 미술품을 일부 취급했으나 해방 후 그나마 중단됐으며, 특히 국립박물관에 흡수된 이후에는 현대 미술에 관한 기능이 완전히 폐쇄돼 버렸다.
우리나라에는 현재 미술대학 내지 미술관계학과가 적지 않아 79년도 졸업예정자는 총 1천5백여명으로 집계된다. 따라서 재학생수는 6천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하지만 어엿한 현대미술관을 설치한 대학은 아직 한군데도 없으며 또 경향을 막론하고 시·도립의 기관조차 없다.
이런 실정이기 때문에 국립현대미술관에 대한 기대는 특별한 것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금년부터 시행되는 문예진흥 5개년 계획에도 이에 대한 확장 내지 기틍 강화의 고려가 별로 없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실제로 이 5개년 계획으로 83년까지 투입될 7백30억원의 문화시설 확장비는 그 태반이 역사, 민속, 자연사 박물관의 신설 및 확장을 위한 것일 뿐, 현대미술관에 대해선 전혀 언급이 없는 것이다.
현대미술 분야를 도외시한데 대해 새삼 아쉬워하는 이유는 유일한 국립 현대미술관조차 너무 허술해 그 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는데 있다.
첫째 이 국립기관은 창설 10년 동안 학예실이나 조사연구과 같은 기구조차 없었으며 전문적인 학예연구원을 한 사람이라도 확보해 본 적이 없다. 그것은 곧 전문적인 조사연구 활동이 전무했음을 뜻하며 그동안 기획전의 잡음 역시 그런데 연유된다 할 것이다.
한국의 현대 미술도 이제는 60여년의 역사를 가지게 됐음에도 전혀 정리가 안된 채 황무지 상태라고 한다. 이러한 정리작업은 의당 미술관이나 대학에서 벌여야 할 것인데, 그 어디에서도 방관한다면 현대 미술의 앞날은 더욱 암담하다 아니 할 수 없는 것이다.
둘째는 빈약한 소장품이다. 현대 미술관의 총 소장품은 2백86점인데 그 절반 이상이 기중품이고 1백18점만이 지난 10년간의 구입작품이라고 한다. 금년도 작품구입 예산은 예년보다60% 증액된 4천7백50만원이라고 하나, 유수한 작고 작가의 대작일 경우한 두 점의 시세밖에 안 되는 셈이다.
또 미술관은 작품만 가지고 운영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연구에 참고할 도서와 국내 작가의 활동상황 및 시시각각으로 변전하는 국제 미술계의 정보를 비치해야 하는데, 그런 아무런 자료도 갖추고 있다니 안타깝다.
세째는 기존 시설의 효과적인 이용과 수용 문제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진열실을 다 메울 작품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나 연중무휴의 상설관이 없는 형편이다.
국전이나 기타 특별전으로 말미암아 수시로 상설 진열작품이 철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나라에 대규모의 대여 전시 시설이 없는 까닭이겠으나 국가적인 기관으로서는 그 품위가 손상되지 않나 적이 우려되는 것이다.
다행히 금년에는 미술품의 보존·수리·연수를 위해 직원 1명을 해외에 파견할 계획이라고 한다. 아마 현대미술관으로선 최초의 쾌사라 여겨지는바, 이를 계기로 하여 좀더 적극적인 전기가 마련돼 명실상부한 기능이 회복되기를 기대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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