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만에 서는 오페라 극장 관객과의 호흡 기대됩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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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0호 06면

“나쁜 남자 같다고요? 저 ‘지젤’ 좋아하는 남자예요. 세상에 없는 사랑에 전율하죠. ‘의리’를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고요. 무대에서 다 보이실 걸요.”

‘돈키호테’로 돌아온 발레리노 김현웅

‘왕자’가 돌아왔다. 2011년 후배 폭행이라는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국립발레단을 떠났던 김현웅(33)이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 3년 만에 선다. 26~29일 공연되는 국립발레단 ‘돈키호테’의 주역 바질리오로 이틀간 관객을 만난다. 지난 5월부터 객원 수석무용수 자격으로 국립발레단과 세르비아 투어, 대한민국 발레축제 등을 함께했지만 전막 공연은 처음이다.

“오페라극장을 정말 좋아하거든요. 딱 제가 끌어당길 수 있는 느낌 때문에요. 3월에 와서 ‘라바야데르’와 ‘백조의 호수’를 객석에서 보는데 너무 낯설더군요. 부담도 되지만 오랜만에 오페라극장에서 관객과 어떻게 호흡할 수 있을지 궁금하고 설레네요.”

지난 2년간 워싱턴발레단 수석무용수로 활동했던 그는 서양인에게도 밀리지 않는 탁월한 신체 조건에 우아함을 자체 발광하는 ‘왕자 포스’로 유명하다. 고3 늦은 나이에 발레를 시작했지만 2004년 국립발레단에 특채돼 거의 모든 공연의 주역으로 섰고, 2012년 미국으로 건너가자마자 신작 ‘드라큘라’ 주역을 맡기도 했다.

“타고난 몸 덕을 봤다는 소릴 많이 듣는데 그 말이 제일 슬퍼요. 노력이 가려지니까요. 후배들이 가끔 얘기해줄 땐 고맙죠. 자기가 가르쳐보니 아무리 조건이 좋아도 노력 없이는 안 되더라는.”

‘드라큘라’ 이후 ‘지젤’ ‘백조의 호수 갈라’ 등 계속 기회가 주어졌고 동료들과도 친해져 미국 생활도 ‘돌아오기 싫을 만큼’ 행복했다. 하지만 올해 초 어차피 돌아올 거라면 ‘아직 꽃이 피어있을 때’ 돌아오자 결심했고, 때마침 강수진 예술감독의 러브콜을 받았다. “국립발레단 활동을 주로 하면서 워싱턴에도 객원으로 계속 참여할 수 있게 됐어요. 어떤 무대건 마음껏 서라고 해주신 강 단장님께 감사하죠. 국립에서 제가 네 번째 모신 단장님인데 리허설을 직접 지도하시고 단원들과 제일 많이 호흡하시는 것 같아요. 워싱턴에서도 단장이 안무를 다 하고 클래스도 직접 하는데, 늘 함께한다는 게 단원들로서 고무적인 것 같아요.”

떠나 있는 동안 발레단이 연습실을 옮겨 남의 집에 온 느낌도 잠시 들었지만 오래 함께해 온 선후배들과의 적응은 어렵지 않았다. 단지 후배들 기량이 훌쩍 좋아져 깜짝 놀랐다고. “아이처럼 생각했던 친구들이 남자가 돼 있는 걸 보니 시간이 흐른 게 느껴지고 감동스러웠어요. 엄청 노력했으리라는 것, 결코 쉽지 않았으리란 걸 아니까요.”

3년 전 사건의 상대방인 수석무용수 이동훈과는 앙금을 터는 과정이 필요했다. 당시 화해가 아닌 합의에 그쳤고, 대화 통로 자체가 단절돼 제대로 사과를 못했다는 것이다.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말로만 화해가 아니라 마음이 풀려야 되니까. 이번에 마음도 풀었어요. 클래스 끝나고 따로 불러서 서로 사과했죠. 동훈이도 ‘형이랑 그렇게 친했는데 한순간에 그렇게 돼서 서운했고 복귀 축하한다’고 해주더군요. ‘돈키호테’ 리허설 하면서 동훈이한테 순서도 배우고… 오히려 단원들이 놀라죠. 만약 동훈이가 불편해하면 저도 조심할 텐데 다행히 잘 지냅니다.”

자신의 잘못으로 터진 사건인 건 분명하지만 세간이 억측하는 선후배 간 경쟁심리 같은 건 절대 없다고 강변한다. “학교 후배들이 샘낼 정도로 친했어요. 왜 동훈이만 챙기냐고들 했죠. 여기선 경쟁을 할 수가 없어요. 콩쿠르가 아니라 단체니까요. 서로 좋은 점 배우고 잘하면 박수 쳐주는 게 프로페셔널인데 무슨 경쟁인가요.”

복귀작 ‘돈키호테’는 개인적으로도 좋아하는 작품이다. 애초에 4월 ‘백조의 호수’를 제안받았지만 ‘돈키호테’를 택한 이유는 작품에 흐르는 ‘자유로운 영혼’ 때문. “왜 재미있느냐 하면 정해진 게 많지 않기 때문이에요. 마임에도 세팅이 엄격한 ‘백조의 호수’와 달리 자기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재미가 있어요. 이 커플은 손에 뽀뽀하고 저 커플은 볼에 뽀뽀하고, 커플마다 자유가 넘쳐 느낌이 다 달라요. 아마 매일 보셔야 할 겁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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