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홍옥「엘레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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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H「맨션·아파트」상가에서 청과물 상점을 경영하는 김한복씨(42·용산구한강로)는 지난 신정 연휴중에 1천8백여만원의 매상을 올렸다. 하루평군 6백만원.
10평을 넘지 못하는 작은 상점에서 이처럼 큰 매상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은 대목으로 물건이 많이 팔리기도 했지만 그보다 취급하는 물건이 값비싼 고급과실인 때문.
그의 상점에는 한 겨울철에도 없는것이 없다.

<연휴매상 천8백만원>
1개 1천원짜리 「멜런」, 2㎏ 1상자에 4천원하는 싱싱한 포도, 1개에 3천원을 주어야 살 수 있는 「파인애플」, 1송이(25개정도)에 1만원하는「바나나」등등.
이처럼 비싼「멜런」·포도등이 날개돗친듯 팔리지만 물건이 달린다.
대종은 역시 제철을 맞은 밀감과 사과다.
김씨는 신정때 밀감1천1백50여상자, 사과6백여상자를 팔았다고 했다. 그러나 같은 사과라도 이곳에서는 상자(15㎏)당 1만8천∼2만원하는「후지」가 아니면 행세하지 못한다. 명절때면 찾는 물건의 70%가 이런 고급품이다.
낱개로는 사과 한알에 7백∼8백원. 점심 한끼를 때우고 「한산도」한갑을 사피울수 있는 금액이다.
원래 사과는 서민의 과실이다. 요즈음은 밀감이 흔해져 값싼 고급과실로 각광을 받고 있지만 그래도 우리나라 과실의 가관은 사과다.
그만큼 흔하고 값도 싸다.
우리나라 과실 생산량 90만4천t(78년)의 절반에 가까운 42만t이 사과다.
먹고도 남아연간 3천∼4천t을 수출,「바나나」와 바꾸어다 먹고 있다. l인당 소비량도 일본이 연간 7㎏정도인데 비해 우리는 10.3㎏이나 된다.
지금도 상자당 3천∼4천원짜리가 얼마든지 있다.

<재래·신품종 모두압도>
그런데도 한편에서는 그 2배가 넘는 값비싼 「후지」사과가 아니면 못먹겠다는데서 우리 소비생활의 한 단면을 읽을수 있다.
물론 「후지」가 귀한 대접을 받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재래품종인 홍옥이나 국광·인도등과는 맛과 크기가 다르다. 생산량도 많지 않다.
재래품종이 약간 신맛이 드는데 비해「후지」는 단맛이 많고 독특한 향미가있다.
이제까지 맛좋은 대표적 품종으로 사랑받아온 홍옥은 제철이 지나 물건이 귀한 때인데도 상자당 8천원, 성출하기를 맞은 국광은 7천원이면 상급품을 살수있다.
7∼8년전 「후지」가 처음 선을 보였을때는 국광이나 홍옥과 값이 같았다. 그런데도 「후지」가 재래품종은 물론 「조나골드」「육오」「쓰가루」「스타크림손」등 같은 신품종을 누르고 값비싼 고급과실로 대접받게 된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크기도 재래종이 한알에 1백50∼2백g정도인데비해 「후지」는 평균 2백50∼3백g을 넘는 것이 흔하다.
「후지」는지금부터 불과 20년전인 58년일본 농림생 동북농업시험장에서 재래종 국광과「딜리셔스」를 교배하여 만든 품종이다.
우리나라에 도입된 것은 67년. 10년밖에되지 않았다.
그런만큼 재배면적도 적어 전체 사과식부면적 4만1천정보의 17%에불과한 7천경보. 그나마 대부분 열매를 맺지 못하는 어린 나무들이어서 실제 과실생산량은 2천1백t수준이다.
연간 사과생산량 38만8천t(78년)의 0.5%정도다.
맛좋고 물건이 많지 않으니 값이 비싼것은 당연하다고 할수도 있다. 본고장인 일본에서도 한알값이 7백∼8백「엔」이나 한다고 한다.
문제는 과실의 종류가 사람의 「스데이터스·심벌」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명절때 서울에 반입되는 1만상자내외의「후지」사과가 대부분 고급「아파트」단지로 몰린다.
『사과맛은 역시 홍옥이 제맛』이라고 명하는 사람도 「제일 비싼것」「최고급」을 달라며 「후지」를 사가는 일이 적지 않다』는 김씨의 말이다.
그러나 「후지」가 귀족대접을 받는것도 길지 않을것 같다.
「후지」재배 면적은 70년의 2백정보에서 78년에는 7천정보로 늘었다.
주산지인 경북능금조합 관내에서는 이미 재배면적의 35%가 신품종으로 대체됐고 80년에는 55%로 늘어날 전망이다.

<귀족대접 길지않을듯>
경북경산군하양읍에서 동서농장을 경영하는 정학수씨(56)는 현재 2만명 과수원의 80%를 「후지」로 바꾸어 심어놓고 있다. 앞으로 2∼3년내에 전 수종을「후지」로 바꿀 계획이다.
홍옥이 정보당 7백만원의 수익을 을릴수 있는데 비해 「후지」는 1천5백만원을 올릴수 있다는 설명으로 미루어보아 수익성을 위해 「후지」로 나무를 바꾸는것은 당연하다. 단지 홍옥이나 국광같은 재래종이 그것대로의 평가를 못받는것이 안타깝다.
양으로 쳐서「후지」가늘어나 값이 재래종과 비슷해지면 좋겠것만 재래종이 아예 절종되지않을까 걱정된다. 개구리참외 청참외처럼….
결국 좋다는것에 무분별하게 몰린결과가 「후지」값을 올렸고 「고유미」를 밀어놓은셈이다. 「후지」는 싸지고 홍옥·국광은 제대접받게됐으면 좋겠다. <신성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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