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만들어야 하나… 모조석굴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 실리콘·러버」란>화강석 변질 안시켜
규소고무. 규소로부터 만든 유기염화「실란」을 고분자화시킨 것으로 물성은 고무와 비슷하다. 탄력성이 좋고 내약품성·내후성이 강하며 전기적 특성과 내압성도 좋아 해저「케이블」이나 전자부품의 피복제로 많이 쓰인다. 또 고온·저온에도 변형이 안되고 붙이고 떼기 쉬워 조각등 예술품을 모사하는데도 석고대신에 많이 쓰인다.
KIST는 이「실리콘·러버」로 지난 1년동안 경주박물관 뜰의 석불과 기타 고려 불상등을 대상으로 복제실험을 실시, 화강석에 아무런 화학적 반응이 나타나지 않음을 확인했다.문공부는 최근 모조 석굴암건설안을 다시 문화재위원회에 제기했으나 위원들의 합의를 얻지 못해 거듭 보류되고 말았다.
문화재관리국은 76년7월 국보24호인 경주석굴암을 실물대로 모조 축조하기로 착안한 이래 수차 문화재위의 심의안건으로 올렸었지만 번번이 의견을 모으지 못했을뿐더러 도리어 학계의 찬반론을 불러일으켜 『신중한 연구과제』라는 단서가 붙음으로써 난관에 부닥쳐왔다.
그럼에도 관리국은 모조축조안의 일환으로 석조조각의 복제 방법연구를 KIST에 의뢰했고 그 결과 최근 보고되어 다시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요청한 것이다. KIST의 연구결과는 화강석조각품을 「실리콘· 러버」라는 물질로 떠내면 조각 자체에 손상없이 원형을 복제해 낼수 있다는 것. 하지만 위원회의초점은 『과연 관광용 모조석굴암이 필요한가』라는 원점문제로 돌아가 논란을 되풀이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모조 석굴암 건설안은 아직 구체적으로 성안된게 없다. 방법론이 토의된바도 없고, 입지도 선정된바 없다. 이런 설왕설래의 단계이지만 문화재관리국은 지난해 현석굴암의 기본실측을 마쳤으며 이어 금년에는 석굴암 내의 조각을 「실리콘·러버」로 하나하나 모형제작할 것을 계획하고 있다.
말하자면 위원회의 신중론과는 별개로 관리국은 모조 석굴암축조를 전제로 한 기초작업을 계속 추진해 『금년내로는 축조안의 뼈대가 마련되지 않겠느냐』는 것이 한 실무자의 전망이다.
모조 석굴암을 만들려는 생각은 당초 석굴암의 현상보존이란 측면에서 발단된 것. 어떻게 하면 올바로 보존하느냐에 초점이 있다. 이에 대해 남천고교수(서울대공대)는 「현상에서도 충분한 보존책이 있으므로 제2석굴암이란 필요치 않다. 이런 계획은 학술적인 입장에서 검토돼야하며 행정적으로 처리해서는 곤란하다』고 말한다.
전 국립박물관장 김재원박사는 『모조품에서는 조상의 숨결을 느낄수 없으며 쓸데 없이 손을 대는 동안 문화재에 많은 과오를 저지르게 된다』고 지적, 필요에 따라서는 석굴암의 일반 출입을 계속 금지시키더라도 과학적인 연구를 적극적으로 벌인다면 더오래 안전하게 보존할 수 있다고 완강하게 반대론을 편다.
동국대 황수영대학원장은 모조 석굴암이란 종교적 차원에서도 바람직한 일이 아니라고 반대한다. 『석굴암은 단순한 미술품이 아니라 종교적 의미가 부여돼 한층 높은듯을 지니는 것인데 신조해서는 오히려 본연의 아름다움과 숭고함마저 그르치게된다. 아무리 중요 역사적 유물이라도 그대로 모작해 관광품화하는 일은 세계 어느곳에도 없는「난센스」라는 지론이다.
문화재위원이기도 한 황박사는 특히 『아무리 좋은「설리콘·러버」라 하더라도 상태가 나쁜 석면에다 무엇을 바르고 붙였다 뗀다는것은 끝내 손상을 가하는 결과가 된다. 만약 현상을 이이상 보존할수 없어서 모조해두어야할 형편이라면 뛰어난 조각가가 정확히 모각하는 방법을 택할수도 있지 않느냐』고 말한다.
이같은 문제는 10여년전에도 문화재위간회에서 거론된 일이 있다.
당시 미국의 「스미드소니언」빅물관 재단이 석굴암을 모조해 하나는「워싱턴」에 두고 다른 하나는 한국이 보관하자고 제의한바 있었으나 그때도 역시 한국의 거부로 실현되지 못했다.
이에 비하여 서울대 김원룡박물관장은 이미 과학진에 의해 안심할만한 실험결과를 얻었다면 복제품을 떠서 기록으로 보존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역시 문화재위원인 김박사는 『아무도 똑같이 조각해 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최소한의 손상도 없이 떠낼수있다면 최상의 방법이다.
일제때 석고로 떠놓은것이 있으나 조악품이다. 현상을 가만히 두자는 것은 소극적인 파괴이며, 목숨을 살리기 위해 피부 일부에 흠이 생기더라도 수술을 가하는 것이 적극적인 보존책이 될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김박사는 반드시 제2석굴암을 축조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우선 복제를 만들어 두어야 겠다는데 찬의를 포하고 있다. 그래서 앞으로 제2석굴암을 축조하게 된다면 이것이 원형으로 쓰일수,있다는 주장이다.
모조 석굴암 계획은 이같이 3년째 원점에서 맴도는 실정이며, 지엽적인 문제에 이르러서는 더욱 학계의 찬·반론이 엇갈리고있다.
따라서 현장보존의 한 방편으로 모조 석굴암 건설안이 제기됐을 따름이지 현재의 석굴암 그 자체에 대한 최선의 보존책이 모색돼 있거나 연구기구가 설치된것도 아니다. 그런점에서보면 이제까지의 논의는 외곽에서 맴도는 느낌이다.
또 원형을 복원한다고할때 석굴암조영당시의 원형은 어떠하였으며 그동안 어떻게 변형돼 왔을까. 현재 눈에 보이지 않는 결구의 문제등에 이견이 적지않아서 석굴암에는 1천2백여넌의 수수께끼가 산적해 있다.【이종석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