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속의 「소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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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이규보· 박인노· 박지원· 김병연(김삿갓)·김소월등은 우리 국문학사에 빛나는 인물들이다. 이 가운데 한두 사람의 시 한수쯤은 암송(암송)해볼만도 하다.
-일애코 풍화한뎨 조성이 개개(개개)로다.
만정낙화에 한가히 누웠으니
아마도 산가 금일이 태평인가 하노라.
고려시대의 문장가로『동국이상국집』등의 문집을 남긴 이규보의 시조다.
「백운산인」의 운치가 사뭇 우아해 보인다.
박인노의 『노계가사』에 나오는 시 한수는 언제 욾어도 흐뭇하다.
-남으로 생긴것이 부부같이 중할런가.
사람의 백폭이 부부에 가졌거든 이리 중한 사이에 아니 화코어찌하리.
임진난때 「태평사」를 지어 병졸들을 위로했다는 박인노는 수문장까지 지낸 노장이었다.
만년엔 전원에서 시가로 세월을 보냈다. 송강·고산과도 비교되는 대문장가.
소월의 시는 노래로도 즐겨부르고 있다. 시의 율조나 어휘들이 어딘지 우리 산하의 흙을 만지는듯 친근감을 느끼게 된다.
-눈은 나리네, 와서 덮이네.
오늘도 하룻길
칠팔십리
돌아서서 육십리는 가기도했소.
『산』·『진달래꽃』·『왕십리』·『님의노래』·『산유화』등은 귀에 익은 노래들이다.
그러나 무뚝뚝하고 정감이 없어 보이는「러시아」어로 그런 시들을 어떻게 옮겨 놓을수 있을지 궁금하다.「프랑스」어라면 몰라도 양철지붕에 빗소리같은 「러시아어로는 그 향기와 운치를 과연 재현할수 있을지.
하지만 소련사람들은 어느 민족보다도 시를 즐겨한다. 언젠가 미국의 극작가「아더·밀러」의 소련기행문을 읽은 생각이 난다. 그는 소련의 한 지방도시에서 교통규칙을 위반했던모양이다. 「밀러」는 호기심도 없지 않아 「푸시킨」의 묘를 보러온 누구라고 말했다. 교통순경은 거수경례를 하더니 「푸시킨」의 시 한 구절을 외어보이더라고 했다.
최근 소련정부의 과학원산하「동방과학연구소」는 한국의 고전과 현대문학등에 깊은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모스크바」나 「레닌그라드」국립대학에선 벌써 논문도 발표한일이 있었다. 『조선서정시인들』이라는 책자와 함께 이규보·소월등의 개인시집등도 출간된 모양이다.
물론 이들의 문학적평가나 안목은「소셜·리얼리즘」에 국한되어있긴 하다. 그러나 우리의 문학작품에 관심을 갖고있다는 그 사실만은 이들의 학문적인 깊이나 폭을 한층 돋보이게한다.
과연 우리는 우리의 문학자들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고 있는지 새삼 주위를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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